호모날레디(Homo naledi)

날레디를 둘러싼 논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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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날레디(Homo naledi) - 날레디를 둘러싼 논쟁들

작성일2019.01.06

날레디를 둘러싼 논쟁들

호모 날레디를 둘러싼 논쟁들을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제기된다. 하나는 버거와 발굴팀이 전통적인 방식을 버리면서 자료를 공유하고 빠르게 분석 결과를 발표한 것과 관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레디의 진화사적 위치 또는 분류와 관련하여 발생한 논쟁이다.

고인류학계의 새로운 바람

다른 과학 영역과 마찬가지로 고인류학도 느리게 변화한다. 탐사 현장에서 표본이 하나 발견되고 나서 그 표본의 분석 결과가 전 세계의 다른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공유되기까지는 10~15년이 걸린다. 화석 발굴은 아주 조심스러운 작업이며 수많은 기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또한 화석은 파손되기 쉽고, 그 발견 지역은 섬세하게 보존되어야만 한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취합하여 연구자들은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발굴 현장에서만도 수년의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고인류학자들은 화석의 분석에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여러 표본들을 비교하고 분석 결과를 몇 번이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고인류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표본과 데이터에 대한 소유욕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유명한 고인류학자들이 화석을 분석하는 데 10여 년을 보내는 동안, 아무도 그 화석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표본은 말할 것도 없고 디지털 스캔이나 주형 또는 데이터를 다른 팀이나 과학자들과 공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10여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자신들의 결론을 확신하고서 몇 개의 사진, 표와 함께 공개적으로 발표한다. 심지어 발표 이후에도 화석의 주형을 뜨고 그것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배포하기까지는 또 수년이 걸린다. 물론 새로운 화석이 발견되었을 때, 상식적으로도 발견자에게 그 화석을 기술한 특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전까지, 설사 기자 회견 등으로 발견 사실을 알렸더라도, 일반적으로 다른 학자들은 그 화석에 대한 연구나 논문 발표를 위한 접근에 제한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관례에는 어느 정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 각각의 새로운 화석은 진화사에 중요한 사실을 더하거나 기존 기록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는 1994년 처음 발표되고 명명되었는데, 이 발견은 호미닌의 화석 기록을 80만 년 더 거슬러 올라가 440만 년 전까지 확장시킨 중요한 사건이었다. 아르디피테쿠스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조상에 가장 가까운 화석종으로 주장되었다. 《네이처》에 분석 결과가 처음으로 발표되던 상황에서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팀 화이트(Tim White)가 주도하는 연구팀은 골격 일부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뼈들은 너무 연약해서 퇴적층에서 빼내 연구실로 옮기기 전에 회반죽을 발라서 보호해야만 했다. 고인류학자들을 화석들이 조심스럽게 회수되는 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화이트의 연구팀이 아르디피테쿠스에 대한 철저한 비교와 분석을 진행하는 동안, 새로운 발견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오로린 투게넨시스(Orririn tugenensisi, 2001년 발견)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elanthropus tchadensisis, 2002년 발견)는 둘 다 최소한 600만 년 전의 것으로 아르디피테쿠스를 대신해 가장 오래된 호미닌 화석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오로린의 넓적다리뼈는 직립 보행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화이트의 분석 결과는 여전히 발표되지 않은 채 기대감도 많이 사라졌다.

마침내 아르디피테쿠스가 발견된 지 15년이 지난 2009년 1차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 결과는 인간과 유인원의 마지막 공통 조상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침팬지를 닮은 나무 타는 동물이 아니거나 아르디피테쿠스가 팀 화이트가 주장했던 것보다 인간 계통에서 더 멀리 떨어진 종류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까지도 외부 학자들은 화이트의 화석에 접근할 수 없다. 이러한 제한은 2007년에 처음 기술된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골격에도 해당한다.

호모 날레디를 발견한 버거는 이러한 전통을 깼다. 관습을 깨려는 버거의 노력은 2008년 말라파 동굴에서 그의 아들과 함께 발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의 화석을 발견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장기간의 비교 연구를 수행하는 대신에 그는 서둘러 결과를 발표하여 다른 연구자들이 화석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최초의 논문은 2010년에 발표되었고, 2011년에 《사이언스》에 5편의 논문이 함께 발표되었으며, 2013년에 7편이 발표되었다.

호모 날레디 역시 화석이 발견되고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첫 논문이 발표되었고 대중에게 화석이 공개되었다. 버거는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려던 애초의 생각을 바꿔서 공개 접근(open access) 정책을 따르는 비교적 새로운 과학 저널인 《이라이프(e-LIFE》에 제출하기로 결심했다. 버거와 그의 연구팀은 자신들의 발견을 온라인에 발표하기로 한 결정의 영향력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불과 며칠 만에 십만 명 이상이 이 논문을 보거나 다운로드했으며, 일 년 동안 325,000건에 달하는 다운로드가 이루어졌다. 화석을 공개하는 방식 역시도 단순히 화석을 유리 상자 안에 담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버거와 호크스는 화석들을 3차원 영상으로 촬영해 그 결과를 웹사이트에 올려서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이제 누구든 이 자료를 이용해 화석의 주형을 고해상도 3D 프린터로 재현할 수 있다. 재료비만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든지 최고 품질의 화석 복사본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이 누구나 장벽 없이 인터넷에 접속해 학술 정보를 읽고 쓸 수 있는 오픈 액세스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 정도로 투명하게 데이터를 공유했던 전례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인류학자이자 미국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의 회원인 팀 화이트가 비판의 선봉에 섰다. 화이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알려진 호미닌 중 가장 오래된 호미닌인 ‘아르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를 발견하고 연구한 저명한 학자이다.

화이트는 호모 날레디 연구팀의 연구 과정과 그 결과를 모두 비판했다. 무엇보다 화이트가 강하게 비판한 부분은 버거와 그 연구팀이 자신들의 발견과 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너무 성급하게 발표했다는 점이다. 화이트는 화석이 인터넷상으로 공유되는 것보다 고인류학회에서 먼저 공개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가장 신뢰할 만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화이트의 주장은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소중한 자료를 한 사람이 오랫동안 독점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바로 엘리트주의가 가진 문제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화이트가 그 긴 세월 동안 엄청나게 오래된 호미닌의 뼈들을 자신의 소유로 삼아 누구에게 얼마나 공개할 것인지를 완벽히 통제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화석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통해서 화이트는 계속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동시에 이것은 화석에 대한 연구 속도 역시 그의 통제 아래에서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석 발견에서부터 분석 결과의 발표에 이르는 과정을 바꾸기 위한 버거의 시도는 그의 중요한 첫 발견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보다도 훨씬 더 이전부터 시작됐다. 버거는 과학이 이제는 정보와 해석을 공유함으로써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새로운 세대의 학자였다. 그는 대중을 상대로 온라인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화석 발견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소개하는 방식을 일찍부터 시도했다. 화석 표본을 스캔을 과학자끼리 공유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2002년 전미 생물 인류학 학회에서의 논쟁에서 정보 공유와 접근을 강하게 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라파의 세디바를 거쳐서 2013년부터 시작된 디날레디 방에서의 화석 발굴 작업에서 정점을 찍었다. 버거는 탐사자를 모집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했으며 작업 과정은 촬영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분석 기간을 앞당기고 그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 호모 날레디라는 새로운 종의 명명과 발굴 지역을 기술한 2편의 논문은 2015년 9월에 발표되었고, 한 달 후 2편의 논문이 추가 발표되었는데 놀랍도록 완벽한 손과 발 골격에 관한 내용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2012년 인터뷰에 의하면 화석의 사회생활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실질적으로 전염성이 있었다. “우리가 화석을 공개하자 전 세계가 화석을 보고 그 삶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동굴의 암석에서) 두 개의 유골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재미있는 부분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전 세계도 그걸 알았다는 겁니다.”

버거는 자신의 연구를 불과 2년 만에 발표했고, 3차원 디지털 스캔한 세디바와 날레디 골격의 표본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모르포소스(Morphosource, http://morphosource.org)에 저장하여 3D 인쇄가 가능한 모든 사람이 고해상 복제물을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행동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고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환영했다.

확대 ▲그림 26.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호모 날레디의 두개골 표본을 제작하고 있는 사진(오른쪽)과 그 결과물(왼쪽) (출처: Greatstock/Rarcroft Media)

버거가 발굴과 분석을 서두른 이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팀의 촬영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논문이 발표되었던 저널인 《이라이프》의 리뷰 과정이 느슨해 실수가 많은데도 논문 출판이 가능했다는 설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주장은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구나 논문에 실린 사진과 측정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으며 틀린 부분은 지적하면 된다. 그것이 과학이 작동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논쟁은 대부분 학술적인 경로가 아닌 대중 매체를 통해 벌어지고 있었다. 버거 역시 과학적 논쟁은 결국에는 철저한 과학적 연구 때문에 결론이 나지만, 단기적으로는 많은 과학자가 대중 매체나 소문의 출처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인류학의 역사를 보건데, 새로운 호미닌 화석을 둘러싼 논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중요한 발견은 인류의 진화적 관계를 통째로 다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고인류학자들은 학술지를 통해서 대중 매체를 통해서 인류의 화석을 논의하면서 가설들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상처를 주고 받아왔다.

그러나 호모 날레디를 둘러싼 소동은 고인류학계에 새로운 형태의 흥미로운 도전을 던져 주었다. 인류의 진화 과정보다는 고인류학이 작동해 온 방식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날레디 발견팀은 화석 데이터를 수집하고 배포하는 데 전통적인 화석 연구 방법과는 반대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버거의 전략은 화석 자료를 전통적인 방법보다 훨씬 빠르게 모든 연구자들의 손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고인류학에서는 화석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것, 따라서 화석에 접근하는 것이 핵심이다. 나이 많고 유명한 연구자들이 화석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이 권력을 쥐고서 진화에 대한 담화를 주도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호모 날레디를 둘러싼 논쟁은 인류학의 표준과 실천 방법론에 관한 논쟁이다. 이 새로운 종은 과학을 새로운 사회적 실천 방식을 창조하는 수단으로 삼아, 과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바로 이 점이 호모 날레디를 단순히 논쟁적인 종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이유이다.

호모 날레디 분류에 관한 논쟁

화석 발견팀은 자신들이 발견한 뼈들의 주인공이 새로운 종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호모 속의 호모 날레디(Homo naledi)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에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전문가들도 있었다. 호모 속을 정의하는 데 어떤 비교들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인류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욕 대학교의 인류학자 수전 앤턴(Susan Anton)는 “누군가는 두발 걷기를 결정적인 특징으로 보면서, 호모는 주변 환경을 특정한 방식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호모를 정의하기 위해 두개골의 특징들에 더 집중합니다.”라고 말한다.

확대 ▲그림 27. 호모 속을 정의하는 기준에 합의는 없다. 학자 각자마다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의 차이는 호미닌의 화석들 사이에는 많은 종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른바 ‘세분파 분류학자들(splitter)’과 소수의 종이 있다고 생각하는 ‘병합파 분류학자들(lumper)’ 사이의 계속 되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세분파가 종들 사이에 차이에 중점을 둔다면, 병합파는 유사성에 중점을 둔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란은 화석 기록이 매우 드물고 파편적이어서 화석 간의 차이가 한 종 내의 자연적인 변이인지 아니면 다른 종과 다른 종을 구분하는 구별인지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발생한다. 병합파 학자들이 호모 에렉투스 종으로 보는 화석들이 세분파 학자들에게는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안테세소르, 호모 지오지쿠스 등의 다양한 종으로 분류되는 식이며, 호모 날레디에 대해서도 이러한 논쟁은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사실 화석 기록이 가장 풍부하다고 할 수 있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해서 조차도 이러한 논쟁이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네안데르탈인을 현대 인간과 구별되는 종으로 생각하지만, 몇몇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일상적으로 현대 인간과 교배했고, 따라서 다른 종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조지워싱턴대학교의 고인류학자 버나드 우드(Bernard Wood)는 날레디 유골이 새로운 종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들이 남아프리카에서 거의 완전히 격리된 가운데 진화한 버려진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Flores island)에서 발견된 작은 두뇌를 가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처럼 말이다. 발견된 유골들의 개체 수 그리고 남녀 성별 및 폭넓은 연령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과학자들은 날레디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호미닌 화석 가운데 가장 풍부한 화석군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시마 데로스 우에소스 동굴에서 수집된 유물과 나중에 등장한 네안데르탈 그리고 현대 인간의 표본을 제외하면, 날레디 발굴 지역은 호미닌 화석 발견 기록 가운데 연령대와 개체 수에 있어서 가장 포괄적인 유골을 보유하고 있다.

펜실베니아의 피츠버그 대학교에 근무하는 진화생물학자 제프리 슈워츠(Jeffrey H. Schwartz)는 발표된 날레디 화석 자료들이 하나의 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다양하다는 반론을 《뉴스위크》에서 제시했다. 버거는 그러한 차이가 같은 종 내에서 남녀의 차이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호크스는 슈와츠의 반론을 하나씩 실제 데이터를 들어 반박하면서 “슈와츠 같은 학자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발표된 논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해답을 두고도 공개적인 비판을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때로는 격렬한 논쟁이 오가지만, 모두가 이 새로운 발견이 인간의 화석 기록에 놀라운 추가물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이 화석 무더기는 앞으로 오랫동안 고인류학계를 시끄럽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이안 테터솔은 말한다.

호모 날레디의 분류에 가장 비판적인 고인류학자인 팀 화이트는 발표된 논문 내용을 보고서 호모 날레디가 새로운 종이 아니며 이미 잘 알려진 원시적인 호모 에렉투스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따질 일(Some Bones to Pick)’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 인터뷰에서 화이트는 날 선 비판을 가했다. “호모 날레디는 작은 몸집을 가진 호모 에렉투스에 불과합니다. …… 이미 알려진 호모 에렉투스와 중요한 면에서 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죠. …… 《이라이프》 보충 자료에 열거된 호모 날레디 화석의 80가지 이상의 형질 중 아주 일부분만이 호모 에렉투스와 달랐습니다. 그리고 차이를 보인 얼마 안 되는 형질들도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종 내부(심지어 개체군 안에서도)에서 변이가 많이 나타나는 형질들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시 말해 새롭게 기술된 ‘종’이란 고인류학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종 인플레이션의 한 사례일 뿐입니다.”

버거 연구팀의 주요 일원인 호크스는 신속히 반론을 내놓았다. 그는 호모 날레디와 호모 에렉투스의 주요 차이를 6가지 이상 자세하게 서술했다. 호모 날레디는 호모 에렉투스에 비해 두개골 용적이 유의미한 수준에서 더 작고, 하악골이 더 얇으며, 대퇴골 경부가 좀 더 납작했다. 또한 호크스는 호모 날레디와 호모 에렉투스가 어깨뼈, 정강이뼈, 골반뼈, 척추, 그리고 치열의 몇몇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부분들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매우 확실하기 때문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거의 혹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확대 ▲그림 28. 날레디의 어금니는 다른 호모 속과 비교해 매우 작은 크기이며 호모 사피엔스의 어금니 크기와 비슷하다. 특히 첫 번째 어금니(M1)의 크기는 어떤 호모 속과 비교해도 가장 작다. (출처: 리 버거)

호크스는 이런 점을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런 형질의 차이로 호모 날레디 화석이 호모 에렉투스라고 주장하려면 인간 계통에서 정의된 모든 종을 뛰어넘어 그 종의 수를 확장해야 합니다.” 호모 날레디와 호모 에렉투스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유사성은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그리고 심지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에서도 보인다. 이러한 연관성의 의미를 밝히는 데는 새로운 연구와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어(Chris Stringer) 또한 날레디 화석들이 조지아 공화국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180만 년 된 작은 체구를 가진 호모 에렉투스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리 버거도 날레디를 동굴에서 발굴하는 초기과정에서 이 화석이 드마니시 화석과 매우 유사하며 날레디를 연구하는 데 있어 드마니시 화석과의 비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로비셰프스키(S. V. Drobyshevskiy)는 호모 날레디가 남아프리카 스와르트크란스(Swartkrans)에서 발견된 텔란트로푸스 카펜시스(Telanthropus capensis)에 속한다고 했다. 버거와 호크스는 기자 회견에서 이런 가능성들을 부인했다. 그들은 두개 기저, 치아 형태에서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단순히 몸체 골격만 보더라도 호모 에렉투스와 혼동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호모 날레디를 호모 에렉투스에 포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인간 계통을 에렉투스라고 정의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호모 날레디와 호모 에렉투스 사이에 보이는 일부 유사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확대 ▲그림 29. 호모 날레디의 두개골은 원시적 특징과 파생적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다.
(출처: BBC)

이것은 그저 화석을 공개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며, 화석에 담긴 정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동일한 정보에서 화이트는 긴 세월 동안 넓게 퍼져 살았던 하나의 종에서 나타난 다양한 변이를 보는 반면, 버거와 호크스는 공통된 형질과 고유한 형질들을 모자이크식으로 가진 여러 개별 종들을 본다.

현재까지 호모 날레디가 오직 한 지역에서만(같은 동굴의 2개의 다른 동굴 방)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종이 남아프리카 지역에 한해 존재했는지 아니면 더 넓게 분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호모 날레디가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면, 그 크지 않은 신체 구조 때문에 지금까지 호모 에렉투스의 작은 변종으로 알려졌던 다른 왜소한 화석들을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