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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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 발견과정

작성일2019.09.25

발견과정

플로레스 섬의 발굴 시작

1995년 당시 고고학자인 마이크 머우드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뉴 사우스 웨일에 있는 뉴 잉글랜드(New England) 대학의 강사였다. 몇 년 동안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관한 고고학,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킴벌리(Kimberley) 지역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킴벌리는 260만 년 전에서 1만 1천 년 전 사이 플라이스토세 시기 동안 아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해안으로 이동한 최초의 사람들이 상륙한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곳이다. (가장 최근의 연구는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최초의 이동을 4만 년 전에서 6만 년 전 사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그림 3. 그림은 빙하시대 시기 아시아와 오스트리아 지역의 대륙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현재 오스트리아와 뉴기니를 분리하고 해양 장벽이 대륙으로 연결되었고, 월라사의 섬을 제외하고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섬들은 인접한 본토와 연결되었다. 그림의 화살표는 초기 인류가 65,000년 전에 뉴기니에서 오스트리아로 이동한 경로를 보여준다.

1990년대 중반 무렵에 머우드는 최초의 호미닌이 이용했었을 윌리스선의 3가지 잠재적 경로를 함께 조사할 수 있는 합동 연구를 인도네시아의 연구자들에게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답변을 받지 못한 머우드는 결국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직접 떠나서 자신의 연구 계획에 관심을 보였던 국립 고고학 센터(ARKENAS)의 판지 소에조노(Pandji Soejono) 교수와 지질 연구소(GRDC)의 파초엘 아지즈(Fachroel Aziz) 박사를 만나 자기소개를 했다.


아지즈 박사는 즉시 공동 프로젝트에 반응을 보이며 머우드에게 공동 발굴을 제안했다. 마침 몇 년 동안 그와 그의 팀이 여러 고고학 유적지에서 석기 도구들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로레스 주변의 소규모 프로젝트 몇 개가 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 공동 프로젝트팀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젝트팀은 GRDC, ARKENAS, 가자마다(Gadjah Mada) 대학, 오스트레일리아 노스이스턴(Northeastern) 대학의 다른 고고학자들이 합류하면서 서서히 규모를 키웠다. 그리고 2001년 플로레스 섬의 소아분지(Soa basin)를 시작으로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몇몇 주목할 만한 발굴 성과를 이룬 연구자들은 비교분석을 위해서 리앙부아 동굴을 깊게 발굴하기로 결정했다. 머우드 교수는 리앙부아를 처음 봤을 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처음으로 동굴로 들어갔을 때, 나는 즉시 그 동굴의 크기에 놀랐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가 인상적이었지요. 그곳은 널찍했고, 북쪽 전망으로 빛이 잘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평평하고 잘 마른 점토 바닥으로 되어있어서, 살기에 매우 아늑한 장소로 보였습니다.”

신부님의 발자취

확대 ▲ 그림 4. 네덜란드인 선교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테오도르 베르호벤 신부는 1950년대부터 리앙부아 동굴을 발굴하며 석기 유물을 발굴했다. 사진은 리앙부아 동굴 앞에서 앉아 있는 베르호벤 신부

리앙부아는 인도네시아 동부에 자리 잡은 플로레스 섬에 있는 커다란 석회암 동굴이다. 플로레스 섬은 육상 동물상의 다양성이 낮고 섬 지방의 고유성이 아주 높은, 왈라스선에 위치한 섬들 중 하나이다. 이러한 특성은 빙하시대 월러시(Wallacea)와 순다랜드(Sundaland) 서쪽으로는 아시아 본토, 그리고 사훌랜드(Sahulland) 동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서 고립된 지역으로 남았던 영향이기도 하다. 심지어 마지막 빙하기 동안에도, 플로레스 섬과 숨바와 섬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해협으로 인해서 플로레스 섬과 서쪽의 다른 섬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다. 발리 섬과 롬복 섬 또한 서로 연결되지 않았었다.

리앙부아 발굴 프로젝트는 머우드 교수가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에 네덜란드인 선교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테오도르 베르호벤 신부(Father Theodor Verhoeven)가 진행했던 선행 작업이 있었고, 이후에는 소에조노 교수 같은 전문 고고학자들의 1980년대 발굴을 더 진행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머우드 교수의 지휘로 국제협력 연구팀이 2001년 3월, 리앙부아의 현대적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50년 전 먼저 리앙부아의 가능성을 알아본 베르호벤 신부는 레이든 대학에서 고전사학 석사학위를 위해 폼페이를 연구한 고고학에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마타 멘지(Mata Menge)와 인근의 또 다른 화석 유적지인 보아 레사(Boa Lesa)에서 그는 스테고돈(Stegodon) 유물과 함께 두꺼운 화산재 층 사이에 끼어 있는 사암층에 있는 조각 도구, 절단 도구, 손도끼 등 석기 유물을 다수 발견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베르호벤 신부는 초기 인간과 스테고돈이 플로레스에 공존한다고 결론지었다.

아울러 스테고돈과 호모 에렉투스는 약 75만 년 전에 자바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마타 멘지의 석기들은 비슷한 연령이며, 호모 에렉투스는 어떻게든 플로레스에 도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1970년 또 다른 신부인 요하네스 마링거 신부(Father Johannes Maringer)와 함께 소아 분지에서 추가 발굴을 한 후, 베르호벤은 그의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저널 <인류학(Anthropos)>에 발표했다.

그의 증거는 석기 도구에 대한 그의 검증, 실제의 석기들이 훨씬 오래된 화석과 뒤섞였을 가능성, 그리고 스테고돈이 플로레스에서 살았을 때를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고고학계에서 무시되었다.

사실 플로레스 섬은 초기 인류의 이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아시아와 호주의 대륙지역과 거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위치한 플로레스 섬은 아시아와 호주-멜라네시아(Asia and Australia-Melanesia) 사이의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경계선상에 있으며, 현생인류가 대호주(Greater Australia)의 초기 식민지화를 가능하게 한 경로에 있다. 그러나 이 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개의 바다를 횡단해야 한다. 이러한 깊은 바다 장벽 중 첫 번째는 발리와 롬복 섬 사이의 25킬로미터의 해협이고, 두 번째는 숨바와와 플로레스 섬 사이의 9킬로미터의 해협이다.


최근까지, 오직 현생인류만이 바다를 건너는데 필요한 지적, 언어적, 기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플로레스에서 발견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와 관련된 증거는 이 가정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것은 엄청난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초기 인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의 능력과 업적을 끊임없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시원한 동굴 이야기

커피나무 사이에 숨겨져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리앙부아 동굴로 들어가면 폭이 약 50 미터, 높이가 20 미터인 거대한 동굴이다. 바깥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시원하기 때문에 망가라이 말로 “Liang Bua” 즉 "시원한 동굴(cool cav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플로레스 섬에서 리앙부아 동굴은 항상 특별한 장소로 여겨졌다. 지난 10,000 년 동안 죽은 자들을 위한 의식이 이곳에서 진행된 것이다. 플로레스의 주민들은 고인의 뼈를 황토를 칠하거나 조개로 장식한 다음 동굴에 보관했다. 곡물 재배가 소개된 약 4천 년 전에는 냄비나 자귀와 같은 물품이 죽은자와 함께 매장되었고, 2천여 년 전부터는 청동과 철기 유물을 함께 매장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오늘날에도 플로레스의 주민들은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동굴의 뒤쪽에 달걀과 음식을 제물로 두기도 한다.

리앙부아 동굴의 서늘하면서도 햇빛이 잘 들어오는 환경은 한눈에 인간이 살기에 적합해 보인다. 리앙부아 동굴은 베르호벤 신부가 선교사로 머물던 시절에 섬 어린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교실로 사용되기도 했을 정도로 평평하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발견되지 전까지, 이 동굴을 사용한 인류에 대한 가장 초기의 증거는 9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동물이 이 동굴을 보금자리로 이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 12,000년 전 거대한 화산 폭발이 발생하면서 이 지역 식물과 동물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고, 이들의 삶에 대한 증거는 모두 화산재 아래에 덮였다.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합동 발굴팀이 리앙부아 동굴을 깊이 파내려 가자 수만 년 동안 흙 속에 묻혀있던 유물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스테고돈의 이빨과 뼈 화석이었다. 발굴팀은 최소 47개체의 스테고돈 부분 골격을 회수했다. 현재는 멸종한 원시 코끼리 스테고돈은 물소만한 크기에 체중은 500kg 정도였다. 이 스테고돈의 화석은 이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수수께끼(작은 크기와 생존 연대)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스테고돈은 여러 종들이 있는데 그 크기가 종마다 제각각이다. 중국에서는 키가 4m에 몸무게는 13톤 가까이 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이 든 수컷 개체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장비목 포유류 중에서도 상당한 덩치이다. 반면 리앙부아에서 발견된 스테고돈의 경우는 키 1.2m에 무게는 300~400kg 정도로 추정된다.

놀라운 작은 뼈

1980년대 소에조노 교수가 진행하다 멈춘 지역을 다시 발굴하기 시작한 연구팀의 성과는 놀라왔다. 한번은 연구자들이 동굴 바닥의 단단한 종유석을 파냈는데, 그 바로 아래층에 석기 도구, 뼈와 이빨 등의 유물로 가득 차 있었다. 1세제곱미터당 최대 5천 개의 인공 유물이 있었다. 유물을 발굴하는데 매 시즌 거의 200톤의 퇴적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유물의 발견은 동굴에서 매우 오래된 인류가 거주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떤 종이 살았냐는 것일 뿐이었다. 연구자들이 대략 6m 깊이에서 인간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조그만 팔뼈 하나를 찾자, 발굴을 위한 노력을 두 배로 늘어났다. 그러다 얼마가지 않아 머우드가 진정으로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머우드는 “리앙부아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기 나는 매일 밤 호텔에서 진행 상황을 보고 받는 통화를 했다. 8월 10일 토마스는 내게 전화해서 오래된 아이의 유골을 6m 깊이의 Sector 7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그것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스테고돈 뼈와 인공 유물과 같이 있는 호미닌을 찾아냈다. 우리 프로젝트의 시작 첫해부터 순조로운 출발이었다.”고 그날을 기억했다.

그리고 며칠 후 발굴팀은 두개골 하나를 발견했는데 동물과 인간의 뼈를 전공한 발굴팀의 과학자가 두개골을 살펴본 뒤 “‘맞아요. 난 이게 인간 뼈라고 확신합니다. 근데 너무 작네요.”라고 말했다. 호미닌 뼈의 발견은 그 어떤 발견보다 리앙부아 발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어떤 호미닌 뼈라도 발견되기 전까지는 현장에서 발견된 광범위한 석기 도구 모음을 특정 종과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진짜 호미닌 유골이 발견되었을 때, 연구자들은 화석화된 호미닌과 그들이 동굴에서 발견해낸 석기 도구를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확대 ▲ 그림 5.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을 비교한 사진. 첫 발견 당시 연구진이 아이의 뼈라고 생각한 조그만 두개골은 성인의 것이었다.

현장에서는 완벽한 두개골 하나를 포함해서 총 9개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뼈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현장 연구자들과 발굴자들은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물론 명백히 “사람”인 무엇이긴 했는데, 그것이 어른인지 아이인지, 호모의 어느 종에 속하는지, 몇 살이나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머우드 교수는 유골의 스케치를 같은 대학의 동료인 고인류학자 피터 브라운(Peter Brown) 박사에게 보내고, 직접 유골을 보고 확인하도록 그를 초대했다.


“마이크[머우드]는 인간의 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인도네시아의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무척이나 회의적이었습니다.” 브라운은 2014년 칼러웨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무척이나 흥미로웠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자카르타로 갔습니다. 자카르타는 매우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나는 그곳 음식도 매우 좋아하고, 기후나 문화, 모든 것을 좋아하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무언가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신석기시대나 그 이전 시기의 성장기가 거의 끝난 현생 인류의 두개골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병리적 문제를 가진 개인으로, 성장 장애를 가졌을 거라는 겁니다. 그게 내 예상이었습니다.” 브라운과 과학계는 머지않아 그들의 실수를 깨닫게 되었다. 그 두개골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호빗 알아가기

2004년 리앙부아의 연구팀은 그들의 발견을 <네이처>에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네이처>의 엄격한 미디어 엠바고 정책 때문에 출판 전까지 고인류학계에서 이 발견에 관한 소문은 없었다. 그래서 공식 발표는 과학계에 더욱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발굴 유골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LB1(Ligan Bua 1 화석에 붙은 공식 번호)의 해부구조를 기술하고 그 화석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기준표본(type specimen)으로 지정 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완전히 새로운 종이었는데, 뼈의 크기와 모양이 이전까지 알려진 다른 화석들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거의 완벽한 상태의 유골인 LB1의 독특한 특징을 강조하였다. 대략 1.06m 키에 25kg 무게를 가진 성인 여성으로 1만 8천 년 전 죽었을 당시 18세 정도였다. LB1의 두개골(cranium)은 침팬지 두개골 크기 정도로 작다. 호미닌보다는 차라리 난쟁이 호빗 같았던 이 플로레스 표본은 골반과 다리뼈를 보면 이족보행을 할 수 있었고, 고고학자들이 찾은 유물 증거에 따르면 창과 불을 다루고, 그룹 사냥을 했던 종족이었다.

확대 ▲ 그림 6. LB-1은 30세 전후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으로 키는 1m 조금 넘었다. 400cc로 추정되는 LB-1의 뇌는 침팬지와 가장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크기만큼 작았다. LB-1의 화석은 거의 완전한 두개골과 다리, 손, 발, 골반의 일부 및 기타 파편을 포함하는 부분적으로 구성된다. LB-1은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완벽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화석이다.


연구팀은 네이처의 동료 평가를 참고해서 이 화석의 정식 이름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로 결정했다. <네이처>의 수석 편집자인 헨리 제(Henry Gee)는 표본의 분류법을 둘러싼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에 관한 논문이 처음 우리한테 왔을 때, 연구팀은 이 화석에 라틴식 이름인 ‘순단트로푸스 플로레시아누스(Sundanthropus floresianu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플로레스의 Sunda 지역에서 온 인간’이라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논문 심사를 맡은 사람들이 이 화석은 호모 종의 일원이니 호모라는 이름을 써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심사 위원은 플로레시아누스(floresianus)가 실제로 ‘flowery anus(anus가 항문을 뜻하기 때문에 꽃 항문이라는 의미)’를 의미해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플로레시엔시스로 정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다소 어려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과학적 이름을 보완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대중들에게 그들의 발견을 소개하기 위한 적당한 별명을 찾았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은 공식적으로 2004년 발표되었는데, 그 해에 영화 <반지의 제왕>의 3번째 시리즈인 <왕의 귀환>이 아카데미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표본 화석인 LB1이 여성 화석이었기 때문에 별명을 “플로” 혹은 “작은 숙녀 플로” 바꾸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좋든 싫든, 미디어를 통해 호모 플로렌시엔시스의 “호빗”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

로버트 박사는 플로의 별명이 붙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홍보 목적으로 별명을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석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크(머우드)가 ‘난 호빗이 좋아’라고 말하자 나는 ‘(작가) 톨킨의 저작권을 건드리는 문제가 없다면 좋아.’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터 브라운은 호빗이라는 별명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마이크와 나는 별명에 관해서 서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 여겼고, 그런 이름으로 출판되면 세상 모든 미치광이가 나한테 전화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자기 집 뒤뜰에서 조그만 털북숭이를 봤다는 끔찍한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왔습니다.”

논쟁과 문제점

호빗의 이상한 해부학
고인류학계에서 대두된 첫 번째 의문은 호빗의 크기에 관한 것이다. 이 화석의 뼈는 왜 그렇게 작은 것일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에 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저자들은 대표 표본인 LB1이 완전히 새로운 호미닌 종이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그들이 다른 조상들처럼 호모 에렉투스일 수도 있으며, 호빗이 보여주는 극단적으로 왜소한 체형은 단순하게 일부 코끼리나 하마가 “섬에 격리돼 왜소화된(island dwarfing)” 섬 왜소증의 결과라고 했다.

스테고돈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작은 크기에 관한 가설 중 하나는 ‘섬 왜소화((insular dwarfism)’로 불리는 현상을 입증해주는 증거로 자주 언급된다. 섬 왜소하는 ‘격리된 환경에서 포식자가 없는 가운데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경우 나타나는 극도의 크기 감소’ 현상이다. 한 집단이 특정한 환경에 격리돼 있어 외부로부터 유전자 공급이 끊어지면 ‘유전자 풀’(genetic pool)이 급격히 단순화되면서 왜소증과 같은 형질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활동반경이 좁고 생태계가 단순한 섬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플로레스 섬에서는 섬 왜소화 현상뿐 아니라 그 반대의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플로레스 섬의 최상위 포식자인 코모도왕도마뱀은 현생 도마뱀 가운데 가장 커서 길이 3m, 몸무게 70kg까지 자란다. 도마뱀 뿐만 아니라 플로레스에서만 사는 큰 쥐도 있다. 플로레스자이언트쥐(Papagomys armandvillei)는 몸 길이가 45cm이고 꼬리는 70cm까지 자란다. 또한 지금은 멸종한 키 1.8m, 몸무게 16kg의 거대한 대머리황새(Leptoptilos robustus)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확대 ▲ 그림 7. 섬에 격리돼 제한된 환경에서 몸집의 크기가 작아지는 섬왜소증(island dwarfing)은 활동반경이 좁고 생태계가 단순한 섬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고립된 섬에서 생존한 일부 매머드, 코끼리, 하마, 사슴 등이 그 예이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작은 뇌와 신체 크기 역시 섬 왜소증의 결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은 다양한 거대화와 왜소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플로레스가 고립된 섬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대륙과 연결된 적이 없었던 섬으로 생물종이 유입될 수 있는 경로는 극히 제한적이며 섬에 정착했더라도 섬 특유의 고립된 환경에서 소수의 종이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대륙과는 다른 선택 압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압에 따른 변화가 잘 나타나는 것이 ‘크기 변화’다.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의 양에 따라 덩치가 커지거나 작아진다. 이것을 ‘섬의 법칙(Island rule)’ 또는 이를 주장한 포스터(J. Bristol Foster)의 이름을 따서 ‘포스터의 법칙(Forster’s rule)’이라고 한다. 포스터는 섬에 사는 동물의 경우 본토에 존재했던 포식자의 일부가 없기 때문에 포식 압력이 완화되면 작은 생물이 커지고, 토지 면적이 작아지면서 식량 자원이 제한되면 큰 생물이 작아진다는 설명했다. 포스터는 고립된 섬에서 생존한 일부 매머드, 코끼리, 하마, 보아뱀, 사슴 등을 그 예로 들었다.
건조하고 대양의 한 가운데 고립된 섬인 플로레스는 수렵채집인을 지원하기 위해 매우 제한된 범위의 육지동물을 가지고 있었다. 오직 스테고돈, 쥐, 박쥐, 파충류만이 섭취 가능한 자원이었다. 이 같은 자원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섬의 법칙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에게도 적용된 것일까?

인류의 진화발자취를 보면 체형이 직립보행에 더 적합하게 바뀌고 뇌 용적이 커진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뇌가 커지는 방향으로 인류 진화가 진행된 건 사실이지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은 뇌 크기만으로 지능을 얘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호미닌 가계도에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보통 왜소증이 생기더라도 뇌 용적이 줄어드는 정도는 그보다 미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경우 몸의 성장이 왕성한 사춘기에 들어설 무렵 뇌의 성장은 거의 다 끝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왜소증은 주로 사춘기의 성장이 더딘 결과다. 섬이나 고립된 지역에서 발견되는 여러 피그미족들을 봐도 키는 140~150cm 내외이지만 뇌 크기는 1000cc가 넘는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설사 호모 에렉투스의 변종이라고 하더라도 뇌 용적이 500~650cc는 돼야 한다. 따라서 일부 인류학자들은 ‘플로레스 섬의 LB1’이 이상소두증(microcephaly)에 걸린 피그미족 현생인류라고 주장했다. 이상소두증은 뇌가 비정상적으로 작아지는 질환으로 이 병에 걸리면 백치가 된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1400년 전부터 300년 전까지 마이크로네시아의 팔라우 섬에 거주했던 작은 크기의 인간들과 비슷한 난쟁이 호모 사피엔스의 잔존 집단이라는 가설도 제시했지만, 이들의 특징들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와 전부 유사한 것은 아니었다. 팔라우 표본들의 상세한 분석 결과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몇 가지 유별난 특징들이 조상으로부터 전달되었다기 보다는 환경 요인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논란에 대해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주요 연구자인 피터 브라운 교수는 두개골 전문가인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인류학과 딘 폴크(Dean Folk) 교수와 함께 LB1의 두개골을 정밀 분석한 결과를 2005년 4월 8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들은 침팬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피그미(호모 사피엔스), 이상소두증 환자(호모 사피엔스) 등 다양한 인류의 두개골과 LB1의 두개골을 비교했다. 그 결과 LB1의 두개골 구조는 피그미나 이상소두증 환자의 뇌구조와 확연히 달랐고 크기가 비슷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도 달랐다. 연구자들은 “두개골 안쪽 형태는 호모 에렉투스와 비슷하다”며 “뇌 용적은 작지만 전두엽과 측두엽이 잘 발달돼 있어 고도의 인지능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논문에 대한 반박이 곧 뒤따랐다. 인도네시아 가자마다대 테우쿠 자콥(Teuku Jacob)교수팀은 2006년 9월 5일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오늘날 리앙부아 동굴 부근에서 살고 있는 람파사사 피그미족의 조상 가운데 이상소두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LB1 두개골에서 나타나는 비대칭과 이상 발달이 이상소두증에서 보이는 소견과 비슷하다고 결론지었다.
폴크 교수팀은 이에 대해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들은 두개골 내부의 형태를 3차원 CT(컴퓨터단층촬영)로 재구성해 LB1의 형태가 이상소두증 환자보다 정상인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2007년 2월 13일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이상소두증 뇌는 정상 뇌에 비해 소뇌가 상대적으로 커 돌출해 있고 눈구멍 표면이 좁고 납작하다”며 “LB1에서는 이런 특징이 없다”고 설명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를 발견한 브라운 교수는 “LB1 말고도 대여섯 명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골격이 발견됐는데, 치아형태 같은 특징을 고려해 볼 때 두개골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백치인 이상소두증 환자들이 동굴에 모여 살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지적 능력이 뇌의 크기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란 의미일까?
실제로 리앙부아 동굴에서 함께 출토된 피그미 코끼리 정도의 포유류를 사냥하려면 호빗이 여럿 협동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또 이들은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고 동물의 뼈에는 살을 발라 먹기 위해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물론 다양한 석기도 출토됐다. 불과 400cc 정도의 뇌로 최근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뇌 용적과 기능의 관계를 다시 정립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작은 뇌와 신체 크기가 섬 왜소화 현상의 결과라면, 이는 섬 왜소화 법칙을 따르는 최초의 인간 사례일 뿐만 아니라 더욱 큰 뇌를 향해가는 인간 진화의 보편적 경향성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들이 발굴된 곳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도살하기 위한 석기도 함께 출토되었고, 그런 고기를 요리했을 불의 잔류물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이런 행위는 같은 뇌 크기의 침팬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LB1이 살았던 때는 1만 8,000년 전에 불과했다. 이때는 우리의 마지막 친척인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가 사라지고도 수천 년이 지난 후였다.

호빗의 진짜 나이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의 다국적 연구팀이 2004년 <네이처>에 발표된 LB1의 골격에 대한 첫 연대 측정 결과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74,000년 전에서 12,000년 전 사이쯤에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2016년 연구진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화석을 비롯해 돌 도구, 숯, 퇴적물, 화산재 등 동굴 안에서 발견된 다양한 잔해들을 우라늄-토륨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화석은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에서 6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처>에 새로 발표된 이 연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1만2천 년 전까지 살아남은 것으로 봤던 기존 학설을 뒤집고, 이들의 멸종 시기를 3만8천년 가량 앞당긴 것이다. 이전 발표와의 차이는 2003년 당시 나이를 재면서 더 이후 연대의 표본이 섞여들어 가는 바람에 연대 측정이 잘못됐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마지막 생존 시기인 약 5만 년 전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호주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호모 사피엔스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마치 네안데르탈인의 경우와 유사하게) 멸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피스대의 애덤 브룸(Adam Brumm) 박사는 "플로레스인은 유럽에서 번성하다 현생인류와 만난 뒤 수천 년 만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한 운명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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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발견과정
화석의 특징들
호빗을 둘러싼 논쟁들
변화하는 고인류학의 정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