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ient Henry Molaison

헨리 몰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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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ient Henry Molaison

작성일2020.11.24

Patient Henry Molaison
금정형주요양병원 진료과장 송 강

Henry Molaison의 생애

▲ 그림 1. 어린 헨리와 부모님

헨리 몰래슨은 1926년 2월 26일에 태어났으며, 그의 유년기는 1930년대 여느 중산층 가정의 어린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림 1). 그가 7살이 되든 해 하트 포드 근처의 이웃에서 자전거 사고로 머리 왼쪽을 땅에 박고 쓰러졌고, 10살 때 가벼운 발작이 시작되어 조절이 안되는 뇌전증으로 인해 고통받았다. 10대 초기에는 헨리가 간질증상이 소발작으로 거의 매일 있었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었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족을 돕기

위해 아르바이트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열 다섯 번째 생일에 큰 발작이 처음 찾아왔고, 그 후 심한 간헐적 발작이 계속되었다.

헨리의 간질발작은 그의 건강을 헤칠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에 지장을 주었고, 적응에도 어려움을 보였다. 윌리만틱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놀리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 몇 해 만에 자퇴했다. 그러다가 열일곱 된 1943년에 이스트 하트포드 고등학교에 다시 신입생으로 들어갔다. 키가 크고 두꺼운 안경을 쓴 헨리는 남과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학생으로, 정규 과학클럽 활동시간 말고는 학과 외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헨리를 기억하는 고교동창은 몇 명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헨리가 아주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기억 했

▲ 그림 2. 수술 수년 후의 헨리와 헨리의 부모님. 헨리가 요양원 입소 전까지 부모님이 돌봤다.

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헨리는 언더우드 타자기 공장에 들어가 조립생산라인에서 일을 했지만, 그는 많은 양의 항경련제 약물에도 불구하고 발작 때문에 더 이상 직업을 유지할 수 없었다.
자전거 사고 후 18년이 지난, 1953년 27세의 헨리는 하트포드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인 월리엄 비쳐 스코빌 박사로부터 뇌수술을 받았다. 심한 발작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든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치료법을 다 써버린 스코빌 박사는

헨리에게 이전에 정신병 환자들에게 했던 뇌에서 뇌조직 일부를 제거하는 실험적 수술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만해도 뇌 절제술은 새로운 정신질환 치료법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 그림 3. 절제된 해마의 형태.
▲ 그림 4. 뇌 단면의 사진.
▲ 그림 5. 뇌 단면을 관찰하는 연구자.
▲ 그림 6. 해마의 위치.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뇌의 일부를 자르는 무모한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는 논리였다. 수술은 기존의 방법보다 제한적으로 뇌를 절제하는 측두엽절제술이 적용되었다. 수술 후 발작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특히 뇌 깊숙한 곳인 해마(그림 3~6)가 거의 대부분 제거되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억상실증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하여 평생 그로인해 시달렸다.

헨리는 수술 후 부모의 헌신적인 보살 핌 아래 사생활이 보장되는 삶을 유지하였다(그림 2). 하지만 그는 삽시간에 뇌에 관한 지식에 주린 과학계에 이목을 끌었다. 헨리의 수술 이전, 1953년의 학자들은 뇌 양쪽 해마가 손상되면 기억상실증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러한 근거 부족이 헨리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것이다. 헨리는 과학자 1백여명이 연구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고, 2008년 82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뇌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MIT에 뇌가 기증되어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술과 수술 후 나타난 기억장애

▲ 그림 7. 1950년대의 수술 환경.
▲ 그림 8. 950년대에는 뇌전증이나 정신질환의 치료를 위해 다양한 외과 수술이 이루어졌다. 현재에는 대부분 사용되지 않는다.
▲ 그림 9. 스코빌의 안와피질 언더커팅 수술법.
▲ 그림 10. 헨리의 집도의 윌리엄 스코빌과 그가 제거한 헨리의 뇌 영역
▲ 그림 12. 해마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데 필수적이다.

스코빌 박사는 헨리가 깨어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진행하였으며, 수술은 헨리의 눈썹 바로 위쪽 두개골에다 5인치(약 13센티미터) 간격으로 지름이 1.5인치(약 4센티미터)인 구멍을 두 군데 뚫는 방식으로 행해졌다(그림 7~9). 그리고 구멍 뚫은 곳에서 원형뼈 두 조각을 빼내었는데, 이 두 개의 구멍은 수술의들이 수술도구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일종의 현관문이 되었다. 그는 헨리의 뇌수술에서 흡인술aspiration이라는 방법을 써 뇌를 절제하였고, 스코빌은 뇌 좌우 8센티 미터씩 절제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40년 후에 MRI 스캔 장비로 측두엽 안쪽으로 움직이자 그 당시 받은 수술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공백에서 사라진 것은 양쪽 해마 전면 그리고 해마와 연결된 부위(뇌후뇌피질, 후각주위피질, 부해마피질)였다. 감정을 관장하는 아몬드 꼴 구조인 편도체도 대부분 제거되고 없었다. 손상된 전체 크기는 5센티미터가 조금 넘어 스코빌이 추산한 8센티미터 보다는 훨씬 작았다. 결과를 볼 때 스코빌이 자신이 헨리의 뇌에서 제거한 양을 과대평가하였음이 밝혀졌다. 뇌 양쪽 해마가 여전히 2센티미터 가량 남아 있었지만, 그곳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경로가 파괴되어 이 남은 조직은 쓸모가 없었다(그림 10~12).

헨리는 수술을 받고 2주 반만에 퇴원을 하였지만 예상치 못한 중대한 일이 발생하였다. 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일어난 일상적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을 돌보아 준 직원들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이 수술로 간질발작은 감소하여 스코빌이 목표하였던 대로 발작은 줄어들었지만 헨리는 영구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헨리에게는 순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이 나타났는데, 이 순행성 기억상실증이 일화지식(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기억)이든, 의미지식(새 어휘의 의미를 세계에 대한 일반지식)이든, 수술 후에 접한 것은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금방 들었던 이야기나 조금 전에 본 사람도 30초만 지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새로운 사건을 명시적 기억으로 전환하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이렇게 묘사하곤 하였다. “지금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혹시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게 분명한데 방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그게 항상 걱정스러워요. 항상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몽롱하거든요.” 그는 자신이 꿈에서 금방 깨어난 것 같다고 자주 말하였다. 헨리는 역행성 기억상실증도 보였다. 16세 이전의 자전적 기억은 문제가 없었지만 16세부터 수술하기까지의 11년간의 기억은 부분적으로는 기억하였지만 잘 기억하지 못하였다(그림 13).

수술은 H.M.의 지성이나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 상냥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잔디 깎기, 요리하기, 침대 정리하기, 텔레비전 보기, 빙고, 십자말풀이와 같은 일상적인 일을 계속했지만 직장을 다니거나 더 복잡한 일은 수행할 수 없었다. 연구자인 브렌다 밀너, 수잔 코킨과 H.M.의 대화 중 일부는 양쪽 해마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기억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알려준다.

밀너 : 밖에서는 평소에 무엇을 합니까?
H.M. : 저는 어떤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밀너 :현재 미국 대통령은 누구입니까?
H.M. : 말할 수 없습니다. 정확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밀너 :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H.M. : 남자인 것 같아요.
밀너 : 그의 이니셜은 G.B.(조지 부시)입니다. 도움이 되나요?
H.M. :아니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밀너 : 어제 뭘 했는지 기억하세요?
H.M. : 아뇨.
밀너 : 오늘 아침은 어때요?
H.M. : 아무런 기억도 안나요.
밀너 :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H.M. : 솔직히 모르겠어요.

한편, 그의 수술 전 기억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밀너 : 1929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H.M. : 주식 시장이 무너졌습니다.
코킨 : 내일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H.M. :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
코킨 : 좋은 대답입니다. 행복하신가요?
H.M. : 예. 내 생각에는 그들이 나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됩니다.

헨리는 집안일을 거들기는 했지만 물건을 사용하고서 어디에 두었는지를 잊어버렸고, 전날 사용한 잔디깎기 기계조차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집을 벗어나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동네 산책도 어려웠다. 똑 같은 잡지를 다시 거듭 읽었고 퍼즐 맞추기도 자기가 이미 완성했던 것인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맞추곤 하였다. 수술받은 지 열달이 지난 후 헨리가족은 살던 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전 살던 집과 불과 얼마 안되는 거리였지만 헨리에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새주소를 외우지 못하였고 집으로 가는 길도 찾을 수 없었다. 공간위치에 대한 서술기억인 ‘공간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이 서술기억은 헨리가 상실한 유형의 장기기억으로 학습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저장한 후 의식적으로 자신이 학습한 것이 무엇인지 말로 서술할 수 있는 기억을 말한다.

▲ 그림 13. 노년의 헨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도 본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수술 받을 무렵의 청년으로 생각했다.

헨리는 감정처리의 중심기관이 편도체의 손상으로 감정의 문제 또한 보였다. 그는 결코 아프다거나 배고픔이나 갈증을 호소하지 않았고 수 백개의 연구에 수검자로 참여하면서도 불평 한번 없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성욕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를 연구한 과학자들에 의하면 헨리는 수술받은 날부터 사망하는 날까지 60년 동안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없었고 섹스도 안 했으며 심지어 자위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감정의 통증을 측정할 수 있다면 헨리의 감정도 무감각을 나타낼 것이라 과학자들은 확신했다. 헨리는 참을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외견상 늘 침착하고 평온했으며 태도가 단호했다. 과학자들이 무엇을 시키더라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겉으로 괴로운 감정을 드러낸적도 거의 없었는데, 그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헨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런 큰 상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그에게 계속 물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도 그는 매번 처음인 듯 슬퍼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번씩 슬퍼하거나 언짢아하고 아니면 호전적이 되거나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도 대개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순간 바로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헨리에게는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한 부담이나 애착이 없었다. 후각기능도 상실되어 수술 후 갓 구운 빵의 냄새나 달콤한 장미꽃 향과 같은 천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다. 레몬을 보고 맛은 레몬인데 냄새는 레몬같지 않다고 말하였다. 헨리의 뇌에서 후각기능에 핵심이 되는 이 영역이 수술로 제거되었음을 시사한다.

수술 받은 날부터 죽는 날까지 헨리의 뇌는 더 이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수술은 많은 기초 회로들을 망가뜨리거나 봉쇄했고, 이러한 개입으로 그의 뇌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면서 헨리의 삶은 완전히 바뀌고 축소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헨리의 삶은 망가졌지만 과학자들은 그로 인해 뇌의 양상과 복잡함을 거의 모두 연구하고 뇌과학 혁명을 일을 킬 수 있었다.

헨리에 대한 연구

▲ 그림 14. 브렌다 밀너의 사진. 우측이 최근의 모습이다. ▲ 그림 15. 와일더 펜필드, 브렌다 밀러 기억에 대한 학문적인 기여를 한 Heroes of the Engram 참고

헨리는 기억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많은 자료를 제공한 단일환자로 알려져 있다. 신경심리학자 브렌다 밀너Brenda Milner, 그녀의 전 제자인 수잔 코킨,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에 의해 헨리에 대한 연구는 50년간 계속되었다(그림 14~15). 그에 대한 연구는 기억의 기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기본원리를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헨리의 심리검사를 최초 실시한 연구자로 알려진 브렌다 밀너 박사는 영국 태생으로 2차 대전이 벌어지고 있을 당시 캠브리지 대학에서 심리학적 적성검사를 설계하였고, 그 후 몬트리올로 건너가 맥길대에 입학하여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녀가 1952년 맥길대학에서 도덜드 헵Donald Hebb의 지도로 박사학위 연구를 거의 끝마치고 있을 즈음, 당시 몬트리올 신경학

연구소에 소장으로 있든 신경외과 의사인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의 권유로 간질발작 치료를 위해 좌뇌 측두엽의 내측구조 제거 수술을 받고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던 환자 PB와 FC로 불리는 두 명의 환자를 만난다. 이 두 환자에 대한사례가 1995년 미국신경학학회에 발표되었다. 그 학회에 청중으로 참석해 있었던 윌리엄 스코빌이 미리 강연초록을 읽고 와일더 펜필드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간질발작을 통제하기 위해 양쪽 내측두엽 절제술을 실시한 환자 중 한명(H.M)이 그들과 유사한 기억장애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대화의 결과로 펜필드는 몬트리올 신경학 연구소의 맥길 대학의 브렌더 밀너 박사에게 스코빌의 환자를 검사해볼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밀너는 그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밀너는 캐나다에서 하트포드에 있는 헨리를 방문하여 그에게 다양한 기억력 검사를 하였다.

밀러가 처음 헨리를 검사한 것은 수술한지 20개월이 지난 뒤인 1955년 4월이었으며, 그 당시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인지검사를 실시하였다. 밀러와 제자 코킨이 실시한 표준검사에서 헨리의 IQ는 평균이상으로 나타났으며, 지각능력과 추상적 사고능력, 추리력도 정상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후의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인 장기기억은 헨리가 대단히 의욕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음에도 현저히 떨어져 같이 테스트를 받은 FC와 PB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헨리의 이 기억상실증은 FC와 PB의 경우보다 심각했던 원인은 내측두엽 손상 부위가 더 컸던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후 헨리는 다른 기억상실증 환자의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 학습 논문들에서는 “H.M만큼 나쁘다”라거나 “H.M 만큼 나쁘지는 않다.”라는 식으로 기술되곤 하였다.

이 검사는 스코빌과 밀너의 공동논문 (양측해마 손상 이후 최근 기억의 상실Loss of Recent Memory after Bilateral Hippocampal Lesions)의 토대가 되었으며, 이 논문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논문이 신경학계에 준 중요한 점은 양쪽 내측엽이 구조물이 파기되면 기억상실증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해마를 절제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뇌의 특정부위, 즉 해마와 그 인접부위가 장기기억형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입증하였다는 것이다. 즉, 스코빌과 밀너의 이 유명한 논문은 서로 인접한 해마와 해마회가 장기기억에 관여하는 회로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수백명의 환자를 연구한 결과 한쪽 해마를 제거한다고 해도 다른 쪽 해마가 온전히 보전되어있다면 기억력 손상은 그다지 크지 않음이 밝혀졌다. 왼쪽 측두엽은 시각정보 처리를, 오른쪽 측두엽은 시공간 정보처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빌은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신경외과술 진료를 이어갔지만 헨리는 만나지 않는 가운데 저술과 강연을 통해 헨리와 DC의 비극적인 사례가 지닌 과학적 가치를 의학계에 알렸다.

오늘날에는 감각 및 운동피질에 대한 펜필드의 매핑의 정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측두엽을 자극했을 때 얻은 놀라운 결과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입니다. 전기 자극은 펜필드의 환자 중 8%에서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측두엽을 자극하여 기억을 촉발시킨 사례의 ​​40%에서 이 기억은 환자가 뇌전증 발작 중에 경험한 환각과 동일했습니다. 이로 인해 펜필드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은 의식의 흐름을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발작을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많은 경우 이러한 회상에는 실제 기억과 일치하지 않는 환상적이고 꿈같은 요소가 포함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극이 소수의 환자에만 효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펜필드가 주장하는 것은 특별합니다. 시각 및 청각기억의 경우 측두엽이 이러한 유형의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촉감과 관련된 기억은 감각피질에 위치하고 후각피질에 후각기억이 위치할 것으로 예상 할 수 있습니다. 이 추론은 이치에는 맞지만 현재까지는 단순한 추측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인식할 때 우리는 실제로 그 사람의 얼굴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시각정보를 비교합니다. 얼굴에 대한 기억이 저장되는 장소는 얼굴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여 인식하는 곳과 같은 곳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H.M.의 사례가 처음 설명 된 스코빌과과 밀너의 논문은 2,500개 이상의 후속 논문에서 인용되었으며, 대부분의 과학 논문이 최대 12번 인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H.M.은 해마와 기억 사이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이 글이 작성되는 시기에 "해마와 기억"에 대한 구글 검색은 1,600,000개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H.M.을 언급하는 850개가 넘는 저널이 있다. H.M.이 사망했을 때 밀너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H.M.은 수십 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밀너는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고 느꼈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 그림 16. 애킨슨과 쉬프린의 기억 모형.

헨리의 연구에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 그와 함께 연구를 계속해 온 수잔 코킨박사는 헨리의 고향인 하트 포트 출신으로 헨리가 그녀의 친구 아버지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라는 것을 알고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962년 몬트리올 신경연구소 브렌더 밀너 실험실에 들어가 헨리의 사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박사 후 헨리를 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조건을 제안한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심리학과에 자리를 잡았다. MIT에서 코킨박사와 헨리의 수십년간의 협업이 시작되어 밀너 박사의 일을 연장시키고 해마에 대한 강렬한 관

심을 집중시켰다. 이 연구 과정에서 코킨 박사와 연구자들은 헨리가 숫자폭은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격심한 기억상실증을 겪으면서도 일련의 숫자를 순간적으로 기억하고 따라하는 능력은 보유하고 있었고, 지속적인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고, 여섯자리, 일곱자리 온전한 숫자 외우기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그의 관심이 새로운 화제로 전환되거나 얼굴이나 디자인과 같은 비언적 자극과 같은 리허설이 쉽지 않은 것일 때는 정보가 1분도 안되어 모든 사건을 잊어버렸다. 이것은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기능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림 16). 즉, 정보가 헨리의 뇌라는 호텔에 도착했지만 객실에 투숙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헨리의 사례는 단기기억의 작용기제와 장기기억의 작용기제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오랜 논쟁에 대한 답을 찾아줄 실마리가 되었다. 단기기억, 즉 소량의 정보를 순간적으로 보유하는 과정이 방대한 정보를 몇 분에서 며칠 몇 달, 더 나아가 몇 년동안 유지할 때 일어나는 작용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기기억의 처리과정이 이루어지는 근거지가 되는 영역은 대뇌반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대뇌피질를 시사한다. 스코빌이 수술을 할 때 헨리의 뇌에서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피질의 기능이 온전히 보존되어 단기기억능력은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코킨의 연구팀은 수검자가 방금 얻은 정보를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영국의 심리학자 존 부라운이 1958년 고안한 주의분산 테스트를 실시하였다. 수검자들은 암송을 할 수 없을 때면 쌍을 5초 이내로 잊어버렸다. 이 연구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가 있을 때 단기기억 지속시간은 15초 미만임을 보여주었다. 실험에서 정보를 15초 이상 보유해야 할 때 건강한 사람은 장기기억을 활용했지만 기억상실증 환자는 그러지 못했다. 이 연구로 단기기억의 범위를 한정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단기기억을 눈 앞의 현재와 관련한 것, 바로 이 순간 우리의 레이더 화면에 잡힌 정보를 기억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제 혹은 오늘 아침, 몇 분 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을 단기기억으로 그 용어를 부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단기 저장소는 뇌속에 있는 창고라기보다는 전화번호 같은 정보의 조각들을 보유하여 단기간 활성화하려는 일련의 처리과정이다. 몇 분 이상 지난 뒤에도 기억하고 있는 정보라면 어떤 것이든 장기기억이다. 이 같은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의 구분에 대한 기준을 정립한 사람은 미 카네기멜론대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존 앤더슨(John Anderson) 박사이다.

다중기억

▲ 그림 17. 헨리가 검사 사실을 기억 못해도 오류는 점점 감소하였다. ▲ 그림 18. 거울 추적 검사

연구자들은 또 헨리의 기억상실증 증상의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수술 이후의 겪었거나 들은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였지만 부모와 친척을 기억했고, 학교에서 배운 역사관련 사실도 기억했고, 언어적 표현도 풍부했다. 그리고 양치질, 면도, 식사와 같은 일상생활도 문제없이 해냈다. 그래서 밀너는 헨리의 시각운동(visumotor) 기능을 알아보기 위해 헨리에게 거울-추적 검사(mirror-tracing task)를 실시하였다(그림 17~19). 이 검사는 헨리가 거울을 통해 비친 이중선으로 이루어진 별을 그 이중선 안의 선을 따라 그리는 것으로 연구자들은 헨리에게 사흘 동안 매일 열 번까지 이 검사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그가 선 밖으로 나갈 때마다 오류를 세었다. 흥미로운 것은 헨리는 선을 따라 그리는 능력은 눈에 띄게 나아졌지만 3일 동안 30번의 시연을 했었다는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시연은 뇌에 기억이 관여되는 영역이 하나 이상 있다는 것을 암시했고, 또 운동기억인 절차적 기억은 내측두엽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는 해마와 주변 부위의 손상으로 인해 새로운 장기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운동기술 학습이 헨리에게 보존되어 있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헨리와 같은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들을 연구하면서 기억이란 어떤 단독 기능이 아니라 여러 다른 기능이 조합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종 기억들이 호텔방처럼 유형별로 각기 방을 하나씩 차지한 다중 기억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 그림 19. 우리 뇌에는 다양한 기억 시스템이 존재한다.

MRI로 본 헨리의 뇌

▲ 그림 20. 핸리의 뇌 MRI. 양쪽 측두엽과 해마의 결손이 보인다.

코킨 박사의 연구팀은 1970년대 MRI 발명과 계속된 발전 덕택에 헨리의 뇌를 세밀하게 볼 수 있게 되면서 헨리의 뇌에 어떤 손상이 발생하였는지를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그림 20). MRI가 나오기 전까지는 뇌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수술이나 해부를 통해 직접 들여다봐야만 했다. 연구진들은 1993과 2002~2004년 사이에 MRI를 수 차례 촬영하였다. 헨리의 뇌병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가능해지자 손상된 부위와 장애의 연관성을 밝혀낼 기회가 생겼고, 여전히 높은 수행능력을 보이는 영역에 대한 분석도 가능해졌다. 이 MRI 스캔으로 중요한 것이 발견되었는데, 헨리의 뇌에 양쪽 해마 위로 내측두엽 조직인 부해마회 뒷부분(부해마피질과 후각주위피질)이 약간 남아있었

다. 가끔씩 헨리가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기억해서 연구진들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연구진들은 이 남은 피질이 헨리의 그 행동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했다. 원숭이 연구에서 이 피질이 기억과 중요한 연관성을 가진 부위로 밝혀졌다. 헨리는 수술 뒤 이사한 집의 평면도를 그릴 줄 알았고, 많은 색이 섞인 그림을 들여다보면 여섯 달까지 그 색들을 기억(재인)할 수 있었고, 수술 뒤에 유명해진 연예인에 관한 사소한 정보를 몇 가지씩 설명해주곤 했다.

내측두엽에 있는 여러 구조들이 정보를 처리하는 흐름속에서 각각 해당 피질과 독자적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유연하게 행동을 중재한다는 근거를 보여주었다. 헨리가 일상에서 외부세계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이따금씩 인출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피질의 작용기계 덕분이었다. MRI 이미지들은 헨리의 양쪽 대뇌피질에서 많은 부분이 정상임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피질기능, 즉 단기기억, 언어능력, 지각능력, 추리능력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건강한 상태의 피질과 그 아래쪽 영역 안의 회로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학습하는 기술과 습관 같은 비서술기억을 뒷받침해주었다. 헨리의 사례는 이들 기능이 해마와 별개의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MRI 검사에서 헨리의 간질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이 발견되었는데, 헨리의 60세 치곤 MRI에 나타난 헨리의 뇌는 심한 정도의 소뇌 위축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정상적이었다. 이 소뇌 위축은 헨리의 간질발작을 억제하기 위해 복용된 약물(다일란틴)로 인해 신경이 손상되어 발생된 것으로 연구팀은 보았다. 헨리는 손발의 감각을 상실하였고, 걸음이 느려지고 불규칙해지는 등 균형과 운동기능에도 장애가 생겼는데 이것은 소뇌의 위축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다. 이처럼 MRI의 발견은 헨리의 뇌구조의 변화를 확실하게 알게 해줌으로써 연구에 큰 역할을 하였다.

▲ 그림 21. 헨리는 사후에 본인의 뇌를 기증했고, 연구자들은 단면으로 잘라 디지털화하였다.

헨리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신경과학사에서 궁극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고, 이렇게 되기까지는 젊은 신경심리학자 브렌다 밀너와 수잔 코킨의 헌신적인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밀너는 그녀의 데이터로부터 깊은 통찰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강한 개념적 지향을 가진 뛰어난 실험가였고, 코킨은 단지 그를 연구대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매우 아끼며 가족처럼 돌보았다. 헨리는 이 긴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불평없이 실험에 주의를 집중해 주었고 기꺼이 응하여 주었으며

늘 밝은 표정과 유머로 연구자들을 대해주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헨리에게 늘 감사해하였다. 그리고 거의 60년 동안 헨리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다들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모두가 반드시 머리글자 ‘H.M’으로만 사용했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200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Jacopo Annesse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그의 기증된 뇌를 0.07mm 두께의 2,401 조각으로 잘라냈다(그림 21). 그들은 모든 조각을 사진으로 찍었고, 고해상도 3D 모델로 만들어 과학자들과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하였다. 이 상세한 해부도는 사람의 뇌를 360도로 들여다보고 탐구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러한 헨리의 헌신은 기억장애로 도움 받을 수 많은 환자들에게 영원히 지속될 자취를 남겼다.

▲ 그림 22. 헨리의 집도의 윌리엄 스코빌의 손자 루크 디트리치의 저서. 의료계의 비윤리적 모습을 담았다.
▲ 그림 23. 긴 시간동안 헨리를 연구한 수잔 코킨의 저서.

출처 :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649674/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76910859_The_study_of_patient_henry_Molaison_and_what_it_taught_us_over_past_50_years_Contributions_to_neuroscience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2359960/The-man-memory-left-lasting-impression-countless-neuroscientists-identified-details-life-revealed-woman-studied-decades.html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3/may/05/henry-molaison-amnesiac-corkin-book-feature
https://www.brainfacts.org/in-the-lab/tools-and-techniques/2018/the-curious-case-of-patient-hm-082818
Rodrigo Quian Quiroga, 『Borges and Memory: Encounters with the Human Brain』, The MIT Press(2012), Chapter 4
루크 디트리치, 환자 H.M, 김한영, 동녘 사이언스(2004)
수잔 코킨, 영원한 현재 H.M, 이민아, 알마(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