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of the Engram

엔그램 연구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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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그램 연구의 영웅들

작성일2020.11.16

엔그램 연구의 영웅
금정형주요양병원 진료과장 송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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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 거론 될 연구자입니다. 참조 바랍니다.)

개요

1904년 리하르트 지몬Richard Semon은 기억을 저장하고 회상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경 기질을 설명하기 위해 "엔그램engram"이라는 용어를 도입했습니다. 즉, 엔그램은 기억 흔적을 의미합니다. 최근에 세포 및 신경회로 수준에서 기억 기능을 조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많이 도입되면서 엔그램 연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엔그램 연구 부흥기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기억 연구를 기반으로 합니다. 핵심적인 개념들을 제공해주고, 실패를 극복하고 중요한 발견을 해낸 과거의 과학자들에게 진 빚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연구의 현재 수준과 미래의 전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많은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엔그램과 관련된 중요한 용어, 개념, 접근 방법 및 초기 데이터를 도입한 과학자들을 되돌아보고 검토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단순히 그들의 업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7인의 엔그램 영웅들의 삶과 연구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여기에서 설명합니다. 그들의 역사적인 역할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연구가 오늘날의 연구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도 보여주려고 합니다.

소개

과학에서 진보는 전 세대의 발견과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12세기 신학자이자 작가인 존John of Salisbury은 이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앉아있는 난쟁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시력이 우월하거나 우리의 키가 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어 그들의 큰 키가 우리에게 더해지기 때문입니다.”(McGarry, 2009).

과학 지식은 누적된다는 정서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회의에서 우리는 "당신의 아이디어가 참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충분한 독서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오늘날 연구자들의 업적은 과거의 과학적 연구과 발견 그리고 실패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기억의 신경 기반을 연구하는 우리 저자들은 우리 앞에서 예견하고 조사 방법을 제공한 과학자들에게 진 빚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많은 업적들을 교과서적으로 반복하기보다는 우리의 “엔그램 영웅들”의 삶의 세부 사항과 과학적 공헌에 색채를 더하여 거장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의 영웅 목록은 완전하지 않으며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많은 현대 과학자들은 기억 메커니즘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계속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자들과 그들의 발견은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로 역사적인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엔그램의 역사를 추적하고, 주요한 개념적 또는 경험적 발전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영웅들은 엔그램 뿐 아니라 그 외의 신경과학 연구에 대한 많은 공헌을 했지만, 우리는 그 중 엔그램과 가장 연관성 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이 사람을 엔그램의 영웅으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할 것입니다.

엔그램 : 정의

엔그램은 과거 경험의 결과로 저장된 정보의 신경 기질을 나타내며, 유기체에게 행동을 통하여 기억을 표현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독립체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램이라는 용어는 1904년 리하르트 지몬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물리적 기억 흔적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Gomulicki, 1953). 지몬은 엔그램을 “자극에 의해 생성되는 과민성 물질의 잠재적이고 지속되는 변형”으로 정의했습니다(Semon, 1921). 과학적 실체를 설명하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함으로써 지몬은 기억 연구에서 용어로 인한 잠재적인 혼란을 피하려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동물이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것은 학습 결과의 기록이 나중에 사용되기 위해 신경계 내에 저장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이는 어떤 형태의 엔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엔그램에 대한 과학적인 합의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엔그램의 형태, 위치 및 정확한 정의는 계속해서 널리 논의되고 있습니다(Poo et al., 2016). 현재 엔그램이라는 용어는 과학에서만이 아니라 비과학 영역에서도 사용됩니다. 현재 우리는 뇌 기능을 조사하고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도구의 개발로 엔그램 부흥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를 통해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이전에 버려진 과학적 질문을 부활시키고 연구하여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Josselyn, 2010, 2015; Sakaguchi and Hayashi, 2012; Mayford, 2014; Tonegawa et al., 2015a, b; Eichenbaum, 2016; Kim et al., 2016; Poo et al., 2016).

‘엔그램'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간과된 영웅 지몬

지몬(1859–1918)은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대한 몇 가지 선지적인 이론을 제안한 학자였습니다(Schacter et al., 1978; Schacter, 2001). 지몬은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개체발생을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문구를 만듬)과 함께 일하면서 예나Jena 대학에서 MD(1886)와 PhD(Zoology, 1883)를 받았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불가사리와 바다 달팽이의 개체발생에 대한 연구)을 마친 후 그는 예나 대학의 부교수가 되었습니다. 지몬은 뛰어난 동물 학자였습니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도마뱀(Prasinohaema semoni)도 있습니다(Beolens et al., 2011). 자신의 영웅 중 한 명인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따라서 지몬은 생물학 연구를 위해 호주로 떠났습니다(그의 팀은 207개의 새로운 종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동료의 아내(예나 대학의 저명한 교수인 루돌프 크렐Ludolph Krehl과 결혼한 마리아 크렐Maria Krehl)와의 추문으로 인해 지몬의 경력은 중단되었습니다. 지몬은 그의 직책을 사임했습니다. 그와 마리아는 뮌헨으로 이사 후 결혼했습니다. 지몬은 소속 대학이 없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로 인해 지몬은 분야를 바꾸어 기억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Schacter, 2001).

지몬은 기억에 대한 두 개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Die Mneme」, 1904 그리고 「Die Mnemischen Empfindungen」, 1909). 기억의 개념적 프레임 워크를 도입한 것 외에도 기억과 유전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광범위한 통합 이론을 제안했는데, 아마도 헤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부모가 습득한 학습 내용은 다음 세대에 전달 될 수 있다고 지몬은 제안했습니다. 그러한 “연성 유전soft inheritance”은 원래 프랑스 생물학자 라마르크Lamarck(1744-1829)에 의해 주장되었습니다. 지몬의 논문이 출판되었을 때, 라마르크의 이론은 이미 과학계에서 퇴출 상태였고(Forsdyke, 2006), 지몬의 논문도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다니엘 샥터Daniel Schacter, 제임스 아이크James Eich 및 엔델 툴빙Endel Tulving(Schacter et al., 1978; Schacter, 2001)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지몬의 기억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당시에 대부분 무시되었습니다. 학계의 무관심은 지몬에게 나쁜 영향을 미쳤습니다(Schacter, 2001). 1918년 봄, 마리아는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해 12월 27일, 향년 59세의 지몬은 마리아의 침대에 누워 독일 국기가 드리워진 자신의 심장을 쏘았습니다.

엔그램에 대한 지몬의 기여
지몬은 오늘날 기억 연구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 "엔그램"과 "에크포리ecphory"를 도입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엔그램(대략 “기억 흔적"에 해당)은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하는 뇌 상태 및 구조의 지속적인 물리적 변화를 나타냅니다. 일단 형성되면 엔그램은 휴면 상태가 되지만, 원래(또는 유사한) 사건의 일부를 통해서 깨어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지몬은 에크포리(대략 "기억 회수"에 해당)로 정의했습니다.

새로운 용어를 개발하는 것 외에도 지몬의 연구는 현대적 기억 개념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기억 학습에만 집중했던 동시대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지몬은 기억 회수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기억이 저장된 엔그램과 기억 회수를 위한 단서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지몬은 엔그램을 각성시키는 자극이 원래의 자극과 완전히 겹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불완전하거나 부분적인 검색 단서도 기억의 회수를 유도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현재의 기억 개념과 동일합니다(예 : Neunuebel and Knierim, 2014).

또한 지몬은 "다중 흔적 이론"의 선구자로 해석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예 : Nadel and Moscovitch, 1997). 학습 후 지몬은 원래의 엔그램을 향한 신호가 이벤트에 대한 새로운 엔그램 생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전 엔그램과 새로운 엔그램은 연속성에 의해 원래 기억을 강화시킵니다. 유사한 내용과 그 이후의 연관성("엔그램 간의 공명")을 가진 여러 엔그램의 동시 검색은 일반화, 추상화 및 지식 형성과 같은 복잡한 인지 과정의 기초를 제공 할 수 있습니다(예 : McClelland et al., 1995). 따라서 지몬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정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 따라서 변경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강조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엔그램의 정확한 본질에 대해 추측하기는 망설였지만[(“분자 영역으로 이걸 따라가는 것은 우리의 현재 수준에서는 가능성이 없어 포기합니다.”)(Semon, 1923)] 지몬은 엔그램이 하나의 특정 세포 또는 뇌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더 넓은 영역에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지몬은 엔그램의 정의가 상세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이어그램 모델로 편리하게 엔그램을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식적 표현을 통한 인과 관계에 목말라있고, 당분간이라도 의문을 남겨두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독자들만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Semon, 1923, p 329).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자신의 저서 『마음의 분석Analysis of mind』(Russell, 1922)을 지몬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었지만, 지몬의 이론은 그의 생전 그리고 사후에도 기억 연구자들에 의해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샥터와 동료들의 저서 『엔그램 뒤에 있는 낯선 사람Stranger behind the engram』(Schacter et al., 1978; Schacter, 1982, 2001)에서 밝혀질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무렵 툴빙은 검색 단서가 저장된 정보와 상호 작용하여 과거 경험과 사건의 의식적인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협력적 에크포리" 개념을 도입했습니다(Tulving, 1982).

지몬의 아이디어가 왜 무시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논란이 많았던 라마르크 이론, 당시의 단순 기억 모델의 우세 그리고 실험 데이터의 부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몬은 명문 대학과 관련이 없었고 특정한 기억 연구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샥터(1982)는 이른바 마태 효과Matthew effect가 지몬 뿐만 아니라 여러 과학자들의 경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로버트 머튼(Merton, 1968)이 만든 표현인 마태 효과는 사도의 인용문에 근거합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질 것이며 그는 많은 것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조차 빼앗길 것입니다.” - 마태복음 25:29, King James Version.

과학에서 마태 효과는 지위가 높은 과학자의 작업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의 동등한 작업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현상을 설명합니다("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 지몬은 유명 대학, 과학계 족보 및 기억 연구 커뮤니티와의 관계 측면에서 외부인이었습니다. 지몬의 슬픈 일생은 과학 연구에 있어서 외부자의 견해는 무시된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지몬이 엔그램의 영웅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의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그가 현재의 많은 기억 개념을 어떻게 예상했는지 솔직히 놀랍습니다. 지몬은 유용한 기억 용어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보가 뇌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대한 개념적 프레임워크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과학에서 이론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론이 없이 실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방향타와 나침반 없이 배를 타는 선원과 같으며, 그가 어디로 향할지 전혀 알 수 없다.”

엔그램에 대한 지몬의 개념은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실제로 엔그램을 발견했는지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의 기초가 될 정도로 충분한 깊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Josselyn et al., 2015). 마지막으로, 논란이 되었던 습득한 경험의 유전에 관한 지몬의 아이디어도 받아 들여져 현재는 활발한 연구 영역이 되었습니다(Gräff and Mansuy, 2008; Dias and Ressler, 2014). 따라서 지몬은 엔그램의 창립 영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그램"을 찾아다닌 열광적 영웅 래슐리

지몬은 "엔그램"이라는 용어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자 칼 래슐리Karl Spencer Lashley(1890-1958)는 이 용어를 대중화했습니다(Bruce, 1998). 14세에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래슐리는 처음에는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했지만 곧 동물학으로 전환했습니다. 그의 박사 학위는 유전학에 있었지만(Johns Hopkins, 1911), 그의 경력은 다른 분야의 두 과학자에 의해 다듬어졌습니다(Bartlett, 1960; Beach, 1961). 첫째, 학생 시절 래슐리는 존 왓슨John B. Watson(행동주의의 창시자)의 실험실에 자원했습니다. 둘째, 래슐리는 셰퍼드 프란츠Shepherd Franz(인간 뇌 손상의 기능적 영향을 조사한 최초의 사람 중 한 명이며, 실험동물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뇌 병변을 사용한 선구자들 중 한 명)와 함께 연구했습니다. 실제로 프란츠는 래슐리에게 절제 기법을 가르쳤으며, 이는 래슐리가 엔그램을 찾는 주요 도구가 되었습니다(Franz and Lashley, 1917).

엔그램에 대한 래슐리의 기여
30년 이상 래슐리는 뇌(주로 피질)에서 엔그램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실험에서 그는 피질의 일부분을 제거하기 전에 음식을 찾기 위해 미로를 탐색하도록 쥐를 훈련 시켰습니다. 이러한 실험의 기초가 되는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절제된 피질에 미로 학습을 위한 기억을 저장하는 엔그램이 포함되어 있다면 쥐는 테스트 시 기억력 결핍을 보일 것입니다. 실험 세부사항은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는 대체로 일관적 이였습니다. 병변의 위치가 아니라 병변의 크기가 중요하고, 그 크기는 기억 장애의 정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래슐리는 이러한 유형의 기억을 저장하는 엔그램이 별개의 피질 영역에 국한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엔그램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특별한 장소에 있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래슐리는 “중요한 것은 기억 흔적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억 흔적이 없는 곳이 어딘지 찾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Orbach, 1999). 기억(및 기타인지 기능)이 특정 뇌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래슐리의 결론은 널리 받아 들여졌습니다. 실제로 프란츠는 사이언스지에 「신 골상학New Phrenology」라는 제목의 국소화론자localizationist를 조롱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Franz, 1912).

래슐리가 엔그램의 영웅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래슐리는 엔그램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엔그램 연구에 개념적 및 방법론적 기여를 하여 그를 영웅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기억(및 기타 뇌 기능)이 단일 뇌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래슐리의 결론은 분산 처리의 현대 개념과 공명합니다. 즉, 행동은 고립된 단일 뇌 영역이 아닌 여러 뇌 영역의 공동 작용에서 나타납니다. 분산 처리는 기억을 넘어서 오늘날의 인간 신경영상연구의 기초가 됩니다(McIntosh, 1999; Friston, 2002). 인간의 두뇌 네트워크는 학습, 통합 및 회수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Kim, 2011; Rugg and Vilberg, 2013; Moscovitch et al., 2016). 래슐리는 단일 뇌 영역 연구에 집중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네트워크 기반 접근 방식은 설치류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Wheeler et al., 2013).

과학은 이론의 발전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함으로써 발발달합니다. 래슐리는 실험동물의 기억을 연구하기 위한 뇌 병변의 체계적인 사용을 개척했습니다. 그의 열소작 병변은 당시에는 참신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부수적 손상을 일으켰습니다. 요즘에는 이러한 목표를 벗어난 손상을 피하기 위해 기억의 인코딩 시 활성화되는 뉴런 앙상블("엔그램 세포"라고도 함)들을 대상으로 하는 태깅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회상 테스트에서 이러한 "엔그램 앙상블"(무작위 셀 아님)을 침묵시키면 기억 회수 능력이 손상됩니다(Garner et al., 2012; Liu et al., 2012; Denny et al., 2014; Hsiang et al., 2014; Nonaka et al. al., 2014; Tanaka et al., 2014; Ramirez et al., 2015; Ryan et al., 2015; Berndt et al., 2016; Li et al., 2016; Park et al., 2016; Rashid et al. ., 2016; Roy et al., 2016; Yoshii et al., 2016). 현재도 많은 연구자들은 래슐리가 도입한 방법을 다듬어 엔그램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단 하나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끈질긴 추구(수십 년 이상)에 존경을 표합니다. 1957년 그의 마지막 공개 연설 중 하나에서 래슐리는 자신의 엔그램을 찾는 열정을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시 『스나크 사냥The hunting of a Snark』(Orbach, 1998)에 묘사된 여정과 비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포획되지 않는 신화적인 생물 스나크가 래슐리의 용감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은 엔그램에 대한 안타까운 은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래슐리가 엔그램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 궁금합니다. 도날드 헵Donald Hebb의 학생이자 뇌 자극 보상rewarding brain stimulation의 공동 발견자 중 한 명인 피터 밀너Peter Milner(Olds and Milner, 1954)는 래슐리의 데이터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Milner, 1999). “나는 70년 전 작성된 래슐리의 고전 논문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연구를 위한 피질 병변은 거의 모두 열소작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그 효과는 예측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래슐리는 의도하지 않은 손상을 포함하여 피질 병변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쥐에서 해마는 뒤쪽 피질 아래에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손상을 입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연구에 참여한 37마리의 실험 대상 중 21마리는 해마의 병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래슐리는 미로 학습에 대한 해마 병변의 심각한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시상, 선조체 및 기타 피질 구조에 대한 손상과 함께) 해마 손상을 무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마 병변이 래슐리가 관찰한 미로 학습 장애의 주요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래슐리는 해마에 있는 엔그램을 눈앞에서 놓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래슐리의 제자이자 행동 내분비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프랭크 비치Frank Beach는 그의 멘토를 “심리학 학위가 없는 저명한 심리학자, 이론을 반증하는 데 특화된 이론가, 모든 수업은 쓸모없다고 가르친 고무적인 교사”(Beach, 1961)라고 묘사했습니다. 공식적인 심리학 과정을 이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래슐리는 1929년 미국 심리학 협회 회장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래슐리는 지몬의 연구(지몬을 두 번 인용)(래슐리, 1933, 1935)에 대하여 알고 있었지만 래슐리는 "엔그램"이라는 용어가 지몬의 것임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래슐리가 자신의 실험을 보다 일반적인 "기억 흔적"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엔그램"을 탐색하는 것으로 한 것은 흥미롭습니다. 래슐리가 “엔그램”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는 것은 엔그램 개념이 이미 정착되었고, 그 용어가 지몬에서 기인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포군cell assembly에 관한 책을 저술하고 엔그램의 기초가 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제안한 영웅 헵

도널드 헵Donald Olding Hebb(1904–1985)은 래슐리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캐나다 노바 스코샤Nova Scotia에서 태어났습니다(Brown and Milner, 2003; Cooper, 2005; Brown, 2006). 헵의 부모는 모두 의사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인 마리Mary Clara Olding는 노바 스코샤에서 의학 학위를 받은 세 번째 여성이었습니다. 헵은 소설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영어와 철학 학부를 마쳤습니다(Milner and Milner, 1996). 교사, 농부로 일한 후 그는 심리학 석사(McGill University, 1932)를 마쳤습니다. 그의 PhD(래슐리와 함께)를 위해 헵은 암흑에서 사육된 쥐의 시력을 조사했습니다(Harvard, 1936). 헵은 몬트리올로 돌아와 몬트리올 신경학 연구소(MNI)의 와일더 펜필드Wilder Penfield와 함께 일하면서 인간의 뇌 손상이 지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표준화된 IQ 테스트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모턴N. W. Morton과 함께 개선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McGill Picture Anomaly Test 및 Adult Comprehension Test (Hebb and Morton, 1943)]. 온타리오주 킹스턴의 퀸즈 대학교에서 짧은 시간 동안 헵과 케네스 윌리엄스Kenneth Williams는 설치류의 기억력을 평가하기 위해 새로운 미로를 고안했습니다(Hebb-Williams Maze)(Hebb and Williams, 1946). 이 미로를 사용하여 헵은 인지 발달에 대한 생애 초기 경험의 중요성을 발견하였고, 조기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1942년에 헵은 다시 래슐리의 연구원으로 합류했습니다. 실험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헵은 그의 저명한 저서 『행동의 조직 : 신경심리학 이론The organization of behavior : a neuropsychological theory』에 대한 많은 원고를 완성했습니다. 헵은 래슐리에게 공동 저자를 제안했지만 래슐리는 거절했습니다(Brown, 2006). 실제로 헵과 래슐리는 서로 경쟁적인 관계를 즐겼습니다. 래슐리의 동료에 의하면 헵은 래슐리에게 자신의 책 초안을 보여주었고 래슐리는 일부 내용에 대해 논평했습니다(Orbach, 1998). 그러나 헵은 이러한 제안을 최종 원고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Orbach, 1998). 래슐리는 이 책을 단 한 번도 서면으로 인용한 적이 없지만 그의 마지막 강의 중 하나에서 언급한 일이 있습니다(Orbach, 1999).

행동의 조직은 출판되어 광범위한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책은 신경과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헵의 목표는 "신경생리학과 심리학 사이의 간격을 채워주는 일반적인 행동 이론"을 생성하는 것 이었습니다(Hebb, 1949, p vii). 펜필드와 함께 작업하는 동안 헵은 인간은 넓은 피질 영역이 손상되어도 기억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Hebb and Penfield, 1940; Hebb, 1945), 이는 래슐리의 결과와 유사한 발견입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헵의 세포군 이론에 기초가 되어 그는 기억을 위해서 광범위하게 분포된 신경 기질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엔그램에 대한 헵의 공헌
헵은 세포군을 이벤트 중에 동시에 활성화되는 상호 연결된 세포 그룹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러한 세포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 내의 활동은 이벤트 후 잠시 유지됩니다(이벤트가 단기기억에 저장될 수 있도록 함). 세포군 내에서 충분하게 반복된 활성화는 세포군(서로 연결된 뉴런) 간의 상호 연결을 강화하는 성장 또는 대사 변화를 유도하여, 이벤트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세포군은 고도로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포의 일부 하위 집합만 활성화되어도 전체 세포군이 활성화되어 기억 회수 프로세스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세포군은 뇌 영역 전체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일부 작은 구성 요소의 파괴로 인해 치명적인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하지 않으며, 아마도 래슐리 연구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펜필드는 1933년 측두엽을 자극 후 과거를 되살리는 환자를 보았을 때 불신과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환자는 그녀가 부엌에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밖에서 노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이웃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아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환자는 뇌의 특정 부위가 자극을 받을 때마다 멜로디를 들었습니다. 펜필드는 환자 M.M.의 우뇌 반구의 여러 지점을 자극했습니다. 포인트 2가 자극되었을 때 환자는 왼쪽 엄지손가락에 간지럼을 느꼈다고 보고했습니다. 포인트 3에서 그녀는 혀의 오른쪽에서 간지럼을 느꼈습니다. 포인트 7은 혀의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분명히, 포인트 2와 3은 감각 피질에 있었고, 포인트 7은 운동 피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M.M.의 측두엽(11, 12, 17, 18 포인트)을 자극 한 결과입니다.
• 포인트 11[환자가 말함] : “뭔가를 들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 포인트 11[펜필드는 경고 없이 자극을 반복] : “네, 어머니가 어린 소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누군가였습니다.”
• 포인트 12 : “예. 나는 강을 따라 어딘가에서 남자의 목소리와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나요. 강을 본 것 같아요.”
• 포인트 17 : “오! 나는 이 사무실에 대한 매우 친숙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책상이 보입니다. 내가 그곳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내게 전화를 걸었고, 한 남자가 손에 연필을 들고 책상에 기대어 있습니다.”
• [펜필드는 그가 그녀의 뇌를 자극 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 포인트 18 [측두엽의 바닥을 펜필드는 경고 없이 자극] : "나는 연극의 한 장면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대사를 말하고 있고 나는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기억 속에서 그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헵이 엔그램의 영웅 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헵은 엔그램(또는 세포군)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웅입니다. 헵은 이벤트(엔그램 형성에 해당) 동안 활동하는 뉴런 그룹 간의 시냅스 강화가 장기기억의 기초를 제공하고, 이 활동의 반복이 기억 회수의 바탕을 제공한다고 제안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시냅스 강화(미시 규모 현상)와 세포군 형성(중간 규모 현상)을 통합해줍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통찰들은 중요한 뒷받침 증거(예 : LTP, 스파이크 의존성 시냅스 가소성 및 세포군)가 수십 년 후에 나타나게 됩니다(예 : Bliss and Lomo, 1973; Wilson 및 McNaughton, 1994; Bi and Poo, 1998; Carrillo-Reid et al., 2016). 현대 엔그램 연구는 거의 예외 없이 헵의 세포군 개념에 기반하여 진행됩니다.

헵의 목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뇌와 행동을 연결하는 것 이었습니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생리학화 함으로써 그는 생리심리학과 행동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하위 분야를 탄생시켰습니다. 그의 세포군 이론과 세포 사이의 연결 정도에 대한 학습 알고리즘은 인공 네트워크 분야의 발전을 도왔습니다. 그의 저서가 계속해서 읽혀지고 자주 인용된다는 것은 헵의 지속적인 영향력에 대한 증거입니다. 과학자의 이름이 형용사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Hebbian plasticity, Hebbian synapse).

인위적으로 엔그램을 깨운 영웅 펜필드

지몬은 에크포리를 외부 단서에 의한 잠재 엔그램의 활성화로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국소 전기 자극만으로 인간의 엔그램을 인위적으로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와일더 펜필드(1891-1976)였습니다.

펜필드는 워싱턴 주 스포캔에서 태어나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Princeton, 1913). 그는 장학생이었고 옥스포드에서 생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찰스 셰링턴을 만났는데, 그는 펜필드가 인간의 기억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데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의사(Johns Hopkins, 1918)가 된 후 펜필드는 여러 기관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McGill University로 이동하여 MNI의 설립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펜필드는 1960년까지 MNI 원장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은퇴 후 그는 정책 조언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면서 소설, 자서전 및 에세이 컬렉션을 출판했습니다(Penfield, 1977; Lewis, 1981). 그의 마지막 책은 그가 사망하기 3주 전에 완성되었습니다.

펜필드는 발작 초점이 있는 조직을 외과적으로 절제하여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치료한 신경외과 의사였습니다. 많은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펜필드의 직업 생활은 그의 개인 생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펜필드의 누나는 수년 동안 발작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누나가 오른쪽 전두엽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은 후 펜필드는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수술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펜필드의 환자는 수술 중에 의식과 대화를 유지했습니다. 종양이 예상보다 커서 펜필드는 거의 오른쪽 전두엽 전체를 제거했습니다. 수술은 종양의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제거했지만 누나는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누나의 암은 재발했고 결국 2년 후 사망했습니다. 펜필드는 그의 수술 결과(부검 결과 포함)를 사례 보고로 남겼습니다(Penfield and Evans, 1935).

엔그램에 대한 펜필드의 공헌
펜필드의 주요 목표는 엔그램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뇌전증 발작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는 각기 다른 뇌 표면 영역을 전기적으로 자극하여 깨어있는 환자의 뇌 지형을 기능적으로 매핑했습니다. 운동 반응(손가락 움직임과 같은)을 유도하는 자극은 전극이 운동피질에 위치함을 알려주었고, 궁극적으로 운동 및 감각 호문쿨루스를 만들었습니다(Penfield and Boldfrey, 1937).

어떤 경우에는 외측측두엽을 자극함으로써 환자가 이전에 경험한 기억의 일부가 촉발되었습니다(Penfield and Perot, 1963, p 672). 특정 뇌 영역의 전기적 자극이 실제 기억 회상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한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Squire, 1987). 그러나 펜필드의 일부 환자는 과거 기억과 비슷한 경험적 현상을 분명하게 보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극을 받은 후 한 환자(Case 3, R.W.)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어머니가 형에게 코트를 거꾸로 입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들립니다.” 이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일인지 물었을 때 R.W.는 “ 예, 여기 오기 직전에.”라고 말했습니다(Penfield and Perot, 1963, p 611). 따라서 펜필드의 전기 자극은 자연 환경에서 엔그램을 깨울 때 발생하는 것과 강한 유사성을 갖는 경험을 이끌어 냈습니다(Hamani et al., 2008).

펜필드가 엔그램의 영웅 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펜필드는 두 가지 주요 이유에서 영웅입니다. 첫째, 그의 연구는 설치류 엔그램 실험의 현대화를 가져왔습니다(예 : Garner et al., 2012; Liu et al., 2012; Ramirez et al., 2013; Cowansage et al., 2014 ; Redondo et al., 2014; Yiu et al., 2014; Ramirez et al., 2015; Rogerson et al., 2016; Roy et al., 2016). 이 연구들은 광유전학 또는 화학유전학을 사용하여 인코딩 당시 활성화 된 뉴런 집단을 인위적으로 재활성화 합니다. 그들의 발견은 자극이 행동적 기억 표현을 유도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펜필드는 임상 기술을 활용하여 기초과학 문제를 해결해내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방법은 현대 임상 신경과학에서 계속 이용되고 있습니다. 두개 내 전기적 피질조영술을 사용하여 뇌전증 환자의 기억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유명한 배우(Tom Cruise)의 이미지를 인코딩하는 동안과 이후 해당 배우의 이름을 회상하는 동안 활성화되는 내측측두엽의 세포를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Gelbard-Sagiv et al., 2008).

펜필드는 엔그램을 연구할 생각이 없었지만 왕립의학협회에서 "인간 두뇌의 엔그램"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엔그램은 심리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아직까지 명확하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Penfield, 1968, p 831) 마지막으로, 펜필드는 다음 영웅인 브렌다 밀너Brenda Milner의 공헌을 위한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해마의 엔그램을 발견한 영웅 밀너

브렌다 밀너(1918-)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었고 문학, 수학 및 언어를 좋아했습니다(Milner, 1998). 밀너는 수학 학사를 시작했지만 곧 실험심리학으로 전환했습니다(Cambridge, 1939). 그녀의 석사 과정(캠브리지, 1949)은 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중단되었습니다. 전쟁 후 밀너는 남편(Peter Milner)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여 헵과 함께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McGill University, 1952). 여기에서 그녀는 펜필드를 소개받았고 뇌전증 수술 중 측두엽의 제거가 인간의 인지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밀너는 McGill University와 MNI에 남아서 오늘날까지 인간 두뇌의 기억 및 기타 인지 기능에 대한 중요한 발견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엔그램에 대한 밀너의 기여
펜필드와 함께 일하는 동안 밀너는 한쪽 측두엽 절제술 후 심각한 기억 상실이 발생한 두 명의 환자(P.B. 및 F.C.)를 테스트했습니다. 이 발견은 한쪽 절제 후 일반적으로 기억 상실이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놀랍습니다. 밀너와 펜필드는 두 환자 모두 반대쪽 측두엽에 숨겨진 병변이 있다고 의심했는데, 이는 이후에 근거가 발견되었습니다(Penfield and Milner, 1958). 1955년 미국 신경외과 의사 월리엄 스코빌William Scoville이 미국 신경학회에서 그들의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밀너는 중증의 약물 내성 뇌전증과 싸우기 위해 양측 내측측두엽 절제 후 기억 상실을 경험한 스코빌의 환자 중 한 명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환자는 현재 연구 커뮤니티에서 헨리 몰레이슨Henry Molaison(환자 H.M.)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획기적인 논문(Scoville and Milner, 1957)에서 스코빌과 밀너는 측두엽 절제술을 받은 환자 10명의 인지 기능(IQ 및 기억 점수)을 평가했습니다. 제거 된 조직의 양과 위치를 환자의 기억 점수와 비교함으로써 그들은 해마와 인접한 측두엽 영역이 장기기억 형성에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57년 래슐리의 마지막 공개 연설은 엔그램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때 밀너와 동료들은 특정 뇌 영역인 내측측두엽이 기억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밀너와 동료들의 발견은 당시 기억의 국소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였으며 기억에서 해마의 역할을 이해하는 연구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습니다.

밀너가 엔그램의 영웅 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경학과 실험심리학을 결합함으로써 밀너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인간 기억 연구를 지배하는 신경심리학 전통을 개척했습니다. 뇌 영상 및 관련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것은 현대 인지 신경과학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신경심리학적 접근 방식을 사용하여 밀너는 기억을 이해하는데 몇 가지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첫째, 밀너의 연구는 이후 수십 년간의 신경과학 연구에서 엔그램에 대한 보다 자세한 가이드를 제공했습니다. 둘째,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일원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H.M.의 기억 상실 정도를 조사하기 위해 밀너는 창의적으로 신경심리학 테스트를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H.M.이 그리기 연습을 한 것을 기억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따라 그리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Milner, 1962). 따라서 밀너는 기억에서 특정 뇌 구조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연구하는 기억 유형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더욱이, 그녀의 결과는 다중 메모리 시스템(Moscovitch et al., 2005)의 후속 아이디어의 초석을 제공하고 현대의 체계적 기억 연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셋째, 밀너는 기억의 동적인 본질을 알려주는 증거를 밝혔습니다. H.M.은 수술 이전에 획득한 정보를 기억할 수 있었지만, 최근 3년의 정보는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내측측두엽 손상 후 발생한 역행적 손실은 기억 공고화consolidation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의 기초를 제공합니다(Frankland and Bontempi, 2005). 표준 공고화 모델에서 사건에 대한 기억은 처음에 내측측두엽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산된 피질 네트워크로 표현되고 해마와 독립적으로 저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 조직의 변화가 기억의 질 변화를 포함하지는 않지만 펜필드와 밀너(1958)는 기억이 해마와 분리 되면 일화적인 세부 사항을 잃고 일반화 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기억 품질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다중흔적이론multiple trace theory(Nadel and Moscovitch, 1997)과 파생된 변형이론transformation theory(Winocur et al., 2010)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다중흔적 및 변형이론과 유사하게 펜필드와 밀너(1958)는 해마가 항상 상세한 기억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상세한 기억의 회상은 기억 형성 후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 전기 자극을 통해 접근 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Moscovitch, 2012).

지몬의 혼을 지닌 개성적 엔그램 영웅 매코널

엔그램의 역사는 선구적이고 다채로운 과학자들이 가득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지몬의 기여도가 간과된 한 가지 이유는 라마르크 유전에 대한 비판 때문입니다(Schacter, 2001). 1960년대 제임스 매코널James Vernon McConnell(1925-1990)은 기억의 “연성 유전”의 부활을 이끌었습니다. 매코널은 엔그램이 RNA로 암호화되어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을 대중화했습니다. 이 이론은 그의 유명한(일부는 악명 높은 것으로 주장하는) 편형동물 실험에서 파생되었습니다(Stern, 2013).

매코널은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University of Texas, 1956). 졸업 직후 그는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직을 시작했습니다(Rilling, 1996). 매코널은 여러 권의 책과 수많은 기사를 썼으며(자폐 아동의 감각 처리부터 학습의 생물학적 기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과학적 관심을 가졌습니다.

엔그램에 대한 매코널의 기여
매코널은 편형동물 플라나리아를 고전적으로 조건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편형동물을 훈련시켜 빛과 충격 사이의 연관성을 형성했습니다. 빛에 다시 노출되었을 때 편충은 조건화된 수축 반응을 나타냈습니다(Thompson and McConnell, 1955). 편형동물의 재생 능력을 이용하여 그는 훈련된 후 양분된 편형동물의 각 절반이 약간의 기억을 유지하는 새로운 편형동물이 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원래 편형동물의 꼬리와 머리 절반 모두 재훈련 시 이전 기억이 유지된 효과를 보였습니다. 엔그램이 RNA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는 가설에 대한 두 번째 테스트에서 매코널은 훈련된 벌레를 으깨어 다른 벌레에게 먹였습니다. 벌레들은 마치 기억이 전송된 듯 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매코널의 기억전달에 대한 발견은 출판되었고(McConnell et al., 1959; McConnell, 1962) 대중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매코널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The Worm Runner 's Digest』라는 제목의 풍자적 저널을 만들어 자체 출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매코널의 기억 전달을 재현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일부는 그의 발견을 재현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매코널의 연구는 잘못 설계되고 제대로 통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널리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계속 강의하고 글을 썼지만 과학적 명성과 보조금은 잃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매코널은 1985년에 유나바머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언론에서 매코널의 악명 때문일 것입니다. 매코널은 편지 폭탄이 터져 청력 손상을 입었습니다.

매코널이 엔그램의 영웅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몬 시대 이후 세대 간 기억 유전은 폐기되었지만 비슷한 아이디어가 현재 적극적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RNAi와 뇌 기능 : 매코널이 옳았나?”」라는 리뷰도 출간되었습니다(Smalheiser et al., 2001). 매코널의 발견은 훈련 후 양분된 편형동물의 양쪽 절반 모두 기억이 복제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Shomrat and Levin, 2013). 마지막으로, 최근 데이터는 엔그램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시냅스가 아닌 뉴런의 핵에 있음을 보여줍니다(Chen et al., 2014; Ryan et al., 2015). 이러한 결과는 일반적으로 DNA 변형이 미래 세대에 정보를 전달하는 엔그램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후성 유전학 연구와 일치합니다(Gräff and Mansuy, 2008; Dias and Ressler, 2014). 따라서 다시 한 번 엔그램의 이야기가 지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한 무척추 동물이 파블로프의 조건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매코널은 엔그램을 연구하기 위한 단순한 모델을 제공 할뿐만 아니라 과학계 전반에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학에 대한 매코널의 유쾌한 접근 방식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는 웜 러너의 다이제스트가 사실과 재미의 혼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나 그의 작업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신 건강 상태가 위험합니다(Stern, 2013).

소뇌에서 엔그램을 발견한 영웅 톰슨

리처드 톰슨Richard Frederick Thompson(1930–2014)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 그는 동네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은 독서광이었습니다. 학부 과정(Reed College, 1952)에서 그는 쥐의 시각에 관한 래슐리의 이론 중 하나를 실험적으로 테스트했습니다. 실제로 톰슨은 래슐리의 영향으로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톰슨은 박사 및 펠로우 과정(Psychology, University of Wisconsin, 1956, 1959)을 마쳤습니다. 이후 톰슨은 여러 기관(오레곤 의과 대학,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스탠포드, 하버드,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포함)에서 교수직을 역임했습니다. 하버드에 있는 동안 톰슨은 래슐리의 사망 후 그의 자리를 차지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래슐리의 영향은 톰슨의 경력과 그의 엔그램 연구에서 볼 수 있습니다(Thompson, 1998).

엔그램에 대한 톰슨의 기여
자신의 엔그램을 찾기 위해 톰슨은 토끼에게 조건화를 학습시켰습니다. 조건 자극인 청각 신호는 무조건 자극 인 각막에 대한 혐오성 공기 분사와 쌍을 이룹니다. 조건화 되지 않은 토끼에서 조건 자극은 행동 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반면 무조건 자극은 눈을 깜박이게 합니다. 그러나 훈련 과정을 거치면 토끼는 조건 자극에 깜박이기 시작합니다.

톰슨은 특정 뇌 영역이 엔그램에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충족되어야하는 두 가지 기준을 정의했습니다(Steinmetz et al., 1992). 첫째, 특정 영역의 신경 기록은 학습된 행동 반응에 일치하는 활동 변화를 보여야합니다. 둘째, 특정 영역의 파괴는 자극에 대한 반응은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학습 내용의 저장을 방지하고 이미 저장된 학습 내용을 소실시켜야 합니다.

해마는 톰슨의 초기 목표였습니다. 해마 세포는 훈련에 의해 활성화 빈도가 증가되어(Berger and Thompson, 1978; Berger et al., 1980) 그의 첫 번째 기준을 충족시켰지만, 해마의 병변은 이 작업에서 학습을 방해하거나 학습된 행동의 수행을 막지 않았습니다(Berger and Orr, 1983; Port et al., 1986; Solomon et al., 1986). 그러나 소뇌는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첫째, 편측 소뇌의 일부 세포는 조건 반응 동안 활성도가 증가되었습니다(McCormick and Thompson, 1984). 둘째, 훈련 전에 한쪽 소뇌 피질과 기저핵의 외과적 제거는 동측 눈 깜박임 반응을 막고 이전에 학습 된 조절 반응을 손상시켰지만, 반대쪽 눈에 대한 조절을 방지하지는 못했습니다(McCormick et al., 1981; Lincoln et al., 1982). 톰슨과 동료들은 논문에서 엔그램이 동측 소뇌에 국한되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McCormick et al., 1981). 본질적으로 톰슨은 래슐리가 해내지 못한 것을 성취했습니다. 그는 "엔그램"을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 운(구부러진 전극)이 발견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Lavond and Kanzawa, 2001). 둘째, 엔그램의 역사처럼, 톰슨이 소뇌에서 엔그램을 발견 한 것은 일부 과학자들(예 : Yeo et al., 1985)에 의해 받아 들여졌지만 일부 사람들은 거부했습니다(Welsh and Harvey, 1991; Bloedel, 1993. ; Bower, 1997). 사실, 자서전적 리뷰에서 톰슨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의 발견은 만장일치로 찬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소뇌 생리학자들은 우리의 발견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합법적이든 아니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과학의 어두운 면에 대한 또 다른 교훈입니다.”(Thompson, 1998, p 537).

톰슨이 엔그램의 영웅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톰슨은 소뇌가 가소성을 가지고 있고 행동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당시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 단순하지만 구체적인 유형에서 비롯된 엔그램을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의 영웅 중 한 명입니다(즉, 눈 깜박임 조절).

톰슨은 어떻게 래슐리가 해내지 못한 엔그램을 찾았습니까? 최소한 두 가지 요인이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톰슨은 비교적 간단한 학습 패러다임을 사용했습니다. 주어진 쥐가 작업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정보가 저장되는지 불분명한 래슐리의 복잡한 미로 패러다임과 달리, 고전적 조건화 실험을 통해 실험자는 조건 자극 및 무조건 자극에 대한 반응을 완벽하게 제어하여 학습의 타이밍과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둘째, 톰슨은 엔그램을 조사하기 위해 전기 생리학적 기록에서 전기 및 화학적 영구 병변, 약리학적 가역 병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각 기술에는 고유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도구의 조합이 가장 강력합니다. 실제로 현대 연구자들은 계속해서 톰슨의 실험 템플릿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톰슨은 귀중한 과학적 레시피를 제공했습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엔그램의 영웅은 다양합니다. 모두가 과학적 선구자들이지만 일부는 사후에야 명성을 얻었습니다.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첫째, 용기 : 우리 영웅들은 모두 연구 분야를 병합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새로운 도구를 도입했으며 종종 관습에서 벗어났습니다. 둘째, 다양한 공헌을 통해 우리의 영웅들은 과학에서 이론과 경험적 발견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톰슨은 다음과 같이 자서전을 마무리합니다.
“제가 받은 많은 영예와 상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와 대부분의 다른 과학자들은 잊혀질 것입니다. 우리가 발견한 내용은 교과서에 이름과 무관한 사실로 나열 될 것이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지식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과 달리 과학적 지식은 누적됩니다.”(Thompson, 1998, p 543).

우리는 과학적 지식이 누적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적 발견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을 잊혀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영웅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앞선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과 인내에 감사함으로써 새로운 힘과 관점을 얻습니다. 현 세대의 과학자들은 바통을 이어받았으며, 그것을 가지고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뒤를 보며 이전 주자들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엔그램의 영웅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평가는 주관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목록을 작성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의 역사를 탐구하는 이점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Journal of Neuroscience 3 May 2017, 37 (18) 4647-4657; DOI:
Rodrigo Quian Quiroga, 『Borges and Memory: Encounters with the Human Brain』, The MIT Press(2012), Chapter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