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발자국, 라이톨리 발자국
▲ 그림 1. 라에톨리 발자국의
주인공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 그림 2. 화산재에서 화석화된 호미닌 발자국 흔적이 뚜렷이 보이는 라에톨리의 발자국 유적지
▲ 그림 3. 리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3년 토고에서 발행한 우표에는 라에톨리 발자국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호미닌 한 쌍이 그림이 메리 리키와 나란히 있다.
1978년 중앙 아프리카에 위치한 탄자니아의 라에톨리Laetoli 사막에서 고인류학자 메리 리키는 현대 고생물학계에 길이 남을 놀라운 발견을 한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27미터로 이어지는 호미닌의 발자국들로, 무려 350만 년 동안이나 화산재 속에서 보존되어 온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발자국 화석의 주인공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이들은 390만 년 전에서 290만 년 전에 아프리카 동부에 살았던 초기 인류이다.
발자국의 주인은 뇌도 작았고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360만 년 전 라에톨리의 발자국을 찍고 걸어간 주인공은 두 발로 걸었기에 인류의 직립보행 최초의 징표가 됐다.
고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발자국이 찍혔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표현했다.
▲ 그림 4. 라에톨리 발자국 유적지는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보호구역 내 세렝게티 평원의 남쪽 가장자리이자 이야시 호수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
약 360만 년 전, 막 우기로 접어들었을 무렵,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는 호우가 닥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디망 화산은 1개월 전부터 주기적으로 회색의 화산재를 뿜어 올렸다.
산기슭의 평원 일대에는 화산재가 계속 흩날렸다. 오후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화산재는 젖은 채 밤의 냉기 속에서 굳어졌다.
거기에는 낮에 그곳을 지나간 코끼리, 영양, 뿔닭, 비비, 토끼, 코뿔소, 기린, 멧돼지, 하이에나 등의 동물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 키가 약 1.4미터 정도 되는 성인 호미닌이 젖은 화산재 위를 천천히 걸어간다. 곁에는 키가 약 1.2미터 정도 되는(아마도 암컷이라고 생각되는) 동료가 있다.
그들은 어깨가 서로 닿을 듯하게 큰 걸음으로 나아간다. 작은 아이는 앞서서 걷는 몸집 큰 성인 호미닌의 발자국을 주의 깊게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북쪽으로 향했다.
북쪽에는 계절적인 흐름으로 깊이 파인 협곡이 있는데 아마 그 근처에 그들의 캠프가 있었으리라. 어느 지점에서 암컷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들의 지역을 어슬렁거리는 검치호랑이를 경계하며,
사바나의 풀숲을 살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협곡을 향해 다시 2~ 3미터쯤 나아갔다. 그 자리에서 발자국은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그들의 발자국이 젖은 화산재 위에 돌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 그림 5.라에톨리 발자국이 만들어졌을 당시 화산폭발로 화산재가 쌓인 하얀 바닥 위를 걸었던 자국이 보존된 당시의 환경을 그린 상상도.
호미닌 외에도 여러 동물들의 발자국은 당시의 생태 환경을 말해준다. (출처: 미국 자연사 박물관)
▲ 그림 6. 라에톨리의 G-1 및 G-2/3의 발자국 사진(A)과 이를 표시한 궤적(B). (출처:게티 연구 재단)
약 360만 년 전, 우리 인류의 전신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afarensis로 추정되는 2~3명의 개체가 비가 내린 화산재가 쌓인 평원을 걸어서 건너갔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 발자국이 남았고 시간이 흘러 그 자국은 그래도 굳었다. 그 후 그 자국 위로 더 많은 화산재가 쌓였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응회암으로 알려진 부드러운 암석으로 압축되었다.
그렇게 360만 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발자국들은 침식으로 인해 약 24미터 길이의 자취가 일부가 드러났고,
1978년부터 고인류학자 메리 리키Mary Leakey가 발견해 나머지 부분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전체 발자국 흔적은 길이가 거의 27m에 달하며 약 70개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엄지발가락이 가장 크고, 다른 발가락들과 같은 방향으로 나 있다. 반면 유인원은 발가락이 손가락과 비슷한데,
엄지발가락이 엄지손가락처럼 작고 옆으로 나 있다. 엄지손가락을 돌려서 둥근 나뭇가지를 잡듯이 엄지발가락으로도 나뭇가지를 잡을 수 있다.
나무 타기를 하기에 좋은 구조인 것이다. 두 발 걷기를 하는 인류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엄지발가락에 모든 몸무게를 싣게 된다. 그래서 엄지발가락이 크고 튼튼하다.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은 360만 년 전부터 튼튼한 엄지발가락으로 두 발 걷기를 했음을 알려준다.
▲ 그림 7. 440만 년 전에 살았던 호미닌인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dripithecus ramidus)는 두 발 걷기보다는 너클 보행이 적합하고 나무 위 생활에 더 익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커다란 엄지 발가락과 유인원보다는 사람과 더 유사한 딱딱한 바깥쪽 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나무를 오르는 것과 직립 보행 사이의 전환을 보여준다
메리 리키는 라에톨리 지역에서 발굴을 계속하며 마침내 발자국의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호미닌 화석을 발견했다.
360만 년 전에서 380만 년 전 사이에 살았던 호미닌 몇몇 개체의 뼈 파편과 치아 화석 14개였다. 또한 라에톨리에는 호미닌뿐 아니라 현대 종과 구별할 수
없는 다양한 포유류와 조류의 수많은 발자국이 있었다. 이 발자국 조사에 따르면 토끼(또는 다른 척추동물)가 비인류 척추동물 발자국의 거의 89%를 차지했다.
헬렌 피셔의 묘사와 비슷하게 발자국의 첫 발견자인 메리 리키는 약 360만 년 전에 나란히 걸었던 두 성인은 손을 잡고 있었고,
그 옆의 아이까지 셋이 함께 걸어간 것은 아닐지 추측했다. 이들이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그들 초기 호미닌이 남성과 여성,
그들의 아이라고 하는 작은 가족 집단으로 생활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 몇 개월 동안이나 함께 움직이고, 먹을 것이 풍부한 장소를 찾아 그들끼리만 사바나를 여행했음에 틀림없다.
당시의 기후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생활 방식을 본다면 이들은 북쪽, 동료들이 있는 산기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예전의 동료들과 합류하여,
커다란 집단 속에서 우기를 보낼 작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만일 이들 셋이 함께 생활하고, 움직이고, 생활했다면, 그들은 각자 가족 구성원에 대해 책임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영국 본머스 대학교Bournemouth University의 화석학자 매튜 베넷Matthew Bennett은 이 발자국들을 “화석화된 움직임fossilized locomotion”이라고 말한다.
베넷은 “발뼈 화석은 단순히 발뼈를 보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착합니다. 발은 뼈를 감싸고 있는 연조직이 만들어 낸 놀라운 기계입니다.
발자국은 골격뿐만 아니라 전체 개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 동안 라에톨리 발자국 모형을 연구한 결과 이 발자국의 주인들이 원시적인 호미닌이지만,
유인원과는 다른 놀랍도록 현대적인 걸음걸이로 걸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그림 8. 림 라에톨리 발자국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 구조가 현생 인류의 발 구조와 매우 유사함을 보여준다.
라에톨리 발자국은 침팬지에게 발견되는 이동식 발가락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히려 엄지발가락이 현생 인류의 나머지 발가락과 같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또한 라에톨리 발자국은 현생 인류의 것과 비슷한 아치를 가지고 있다.(가운데 사진)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하여 라에톨리 발자국이 땅에 닿을 때 가해지는 힘과 현대인의 발에 가해지는 힘을 비교한 결과,
라에톨리 발자국은 해부학적으로 현대인의 발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오른쪽 사진)
(출처: 리버풀 대학교)
화석 기록에서 호미닌 뼈만큼 희귀하고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 유적지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라에톨리는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발자국은 발견되는 순간부터 풍화, 침식, 인간이나 동물에 의한 파괴와 같은 파괴적인 힘에 직면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유적지 보유 국가와 협력하여 연구 후 덮개를 씌워 유적지를 보호하려고 노력해 왔다.
예를 들어 라에톨리의 경우 1979년 조사 후 돌로 발자국 위로 덮어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있다.
▲ 그림 9. 1979년 조사 후 발자국 유적지는 돌로 덮어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있다.
과학적 연구는 발자국 트랙을 복제한 것으로 진행되고 있다.(출처: 탄자니아 국립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