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과학의 유일한 임무는 아니다.
그러나 과학에 부여된 한 가지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 시기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이 간단할 것 같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의문은 동양과 서양, 종교와 철학을 막론하고 인간사의 오래된 문제였습니다.
플라톤이 광장의 토론에서 인간이란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이라고 정의하자. 어느 날 디오게네스가 털을 뽑은 닭을 들고 와 외쳤습니다.
“여기, 제가 인간을 하나 데리고 왔습니다.”
나는 그저 털 없는 짐승일 뿐일까요?
아니면 나라는 존재의 심오한 다른 정의가 있을까요?
철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는 물론이고, 수학, 생물학,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도 세상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패턴과 순서를 조사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달리 말해 모든 학문들은 현상 속에 숨겨진 본질을 찾고, 이를 통해 인간을 알고자 하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나’ 라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 이 인류의 오래된 여정에 관해 말해주는 또 다른 학문을 소개하자 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누구일까’ 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는 제공하는 것은 ‘신’ 이었습니다.
꼭 특별한 종교를 떠올리지 않아도 어느 문화에나 조상의 탄생 신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되고도 길게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며 ‘신’ 이 사라지자, 쉽고도 명확한 답이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남아서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공허함, 외로움을 칼 세이건은 ‘현관 앞에 버려진 갓난아기’로 빗대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내가 누구인지 알려줄 아무런 증명서 하나 없는 고아가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한 가지 방법으로 ‘고인류학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버려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칼 세이건은 최초의 나를 35억년 전에서 찾았습니다.
초기 형태의 단세포 생물이 내부와 외부, 나와 너, 동료와 적을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히 초보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자의식의 탄생입니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나요? 그렇다면 몇백만 년 전은 어떨까요?
고인류학이 인간의 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 400만 년 전, 호모 속은 약 200만 년 어느 시점부터 시작해서 지구 위 어느 생명체와는 다른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이 몇백만 년의 과정을 알려주는 유용한 증거로 화석이 있습니다.
사실 화석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암벽이나 흙덩이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한낱 돌멩이일 수 있는 화석을 자세히 관찰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 선조의 모습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인간에 대해 알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고인류학입니다.
진화론이 그러하듯이 고인류학도 많은 논쟁과 오해를 받은 학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화석종인 네안데르탈인조차 발견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 야만적이어서 인류의 조상이라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고인류학이 추적해 가는 우리 조상의 모습. 인간의 본질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최근 발달한 유전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와 침팬지의 DNA는 2%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찰스 다윈이 “그럼에도 우리는 온갖 고귀한 특성을 지니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몸에,
미천한 기원을 나타내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라고 한 말 속에는 많은 생각이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분명 유인원과는 크게 다릅니다.
만리장성을 쌓고, 모나리자 초상화를 그리고,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고, 달을 탐사하고, 우주 저 너머의 다른 생명체의 존재에 관해 생각하는 종은 단 하나뿐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네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알려면 뒤를 돌아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인류학은 우리가 잊고 있는 우리 본질, 유인원과는 다른 우리의 흔적에 대해 뒤를 돌아보며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고아’ 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길잡이일 수 있습니다.
인류학 지식 나눔은 방문해 주신 여러분과 함께 고인류학사 전반에 걸친 화석들과 그것이 속한 종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하고자 합니다.
어떤 화석종은 익히 알고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종은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발견의 진정한 항해는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고 말했습니다.
인류학 지심 나눔이 내가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여러분께 ‘새로운 눈’ 을 갖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인간만이 정신 또는 영혼을 갖는가?
그러나 독특한 에서 더 나은 단어는 ‘가장 정교한 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과학자들은 순수한 인간의 특성이 동물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